고려 말, 무너져가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가장 시급한 문제로 지적된 것은 바로 토지 제도였습니다. 권문세족(권세와 부를 대대로 이어오며 사회를 지배한 세력)은 불법적으로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며 대규모 농장(莊園)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았고, 그 땅을 경작하는 농민들은 지배층의 수탈에 고통받으며 삶의 기반을 잃어갔습니다. 국가는 세금 수입이 줄어들어 재정은 바닥났고, 관료들에게 봉급을 줄 수 없을 만큼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고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흥 무인 세력과 신진 사대부들은 과감한 토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려 말의 운명을 바꾸고 조선 건국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된 과전법입니다.
국가 재정과 민생의 위기, 과전법 실시의 배경
과전법이 실시된 가장 큰 배경은 고려 말의 극심한 토지 문제였습니다. 권문세족들은 원나라의 간섭을 등에 업고 불법적으로 토지를 겸병(남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자기 소유로 만듦)하고, 백성들을 노비로 삼았습니다. 이들의 농장은 산과 강을 경계로 할 정도로 넓었고, 국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의 조세 수입은 급격히 감소했고, 나랏일의 대가로 땅을 받아야 할 관료들은 정작 제대로 된 토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혼란을 넘어,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이에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만 새로운 왕조를 세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준과 정도전이 설계한 새로운 토지 제도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조준, 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토지 제도를 개혁하는 데 착수했습니다. 이들은 먼저 권문세족들이 불법적으로 소유한 토지를 모두 몰수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과감한 조치였습니다. 몰수한 토지들을 모두 국가 소유로 만든 뒤, 새로운 원칙에 따라 관료들에게 다시 토지를 분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1391년(공양왕 3년)에 공포된 과전법입니다. 당시에는 공양왕의 이름으로 반포되었지만, 사실상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가 주도한 개혁이었습니다.
과전법의 핵심 내용과 목적
과전법의 핵심은 국가에 봉사하는 문무 관리들에게 그 대가로 토지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 즉 수조권(국가가 관리에게 일정 지역의 토지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허락한 권리)을 지급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전법은 크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첫째, 토지 분배 대상을 경기도에 한정했습니다. 이는 토지 개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방의 권력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둘째, 전현직 관료들에게 품계에 따라 토지를 차등 분배했습니다. 셋째, 수조권을 받은 관료가 사망하거나 죄를 지어 관직을 잃으면 국가에 그 토지를 반납하도록 했습니다. 단, 그들의 부인이나 자식에게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수신전과 휼양전을 지급하여 일부 세습을 허용했습니다.
과전법이 가져온 거대한 변화
과전법은 고려 말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가장 먼저,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들의 막대한 토지가 국가에 몰수되면서 권력도 함께 약화되었습니다. 둘째, 국가의 재정 수입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불법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던 땅에서 국가가 직접 세금을 거둘 수 있게 되면서, 국가 재정이 안정되었습니다. 셋째, 농민들의 삶이 안정되었습니다. 권문세족의 수탈에서 벗어난 농민들은 국가에 1/10 정도의 세금만 내면 되는 자영농(자신 소유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전법은 신진 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권문세족의 땅을 빼앗아 신진 사대부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그들이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개혁, 그리고 조선의 시작
과전법은 비록 고려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지만, 그 성격은 새로운 왕조를 위한 개혁이었습니다.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이 과전법을 통해 고려의 오랜 폐단을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열기 위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과전법이 없었다면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건국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과전법은 고려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조선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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