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후 270여 년간 폐허로 남아있던 조선의 법궁, 경복궁. 그 텅 빈 궁터는 땅에 떨어진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던 흥선 대원군은 무너진 왕조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경복궁을 다시 짓는다는 거대한 결심을 합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궐을 재건하여 왕의 위엄을 만천하에 떨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왕조의 자존심을 세우는 데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랐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피눈물로 이어졌습니다.
무너진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우다
흥선 대원군에게 경복궁 중건은 단순한 토목 공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도 정치 시기 동안 허수아비로 전락했던 왕의 권위를 되찾고,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려는 개혁 정치의 핵심이었습니다. 웅장한 궁궐의 모습 그 자체가 바로 왕의 힘을 상징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대원군은 강력한 의지로 사업을 밀어붙였고, 마침내 수백 년간 버려졌던 땅 위에 다시금 장엄한 궁궐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막대한 비용, 백성의 허리를 휘게 한 당백전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궁궐을 짓는 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대원군은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처음에는 양반과 부자들에게 ‘원납전’이라는 이름의 기부금을 거두었습니다. ‘원해서 납부하는 돈’이라는 뜻이었지만, 실제로는 강제 할당에 가까워 많은 이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하지만 원납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대원군은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위험한 카드를 꺼내 듭니다. 바로 ‘당백전’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한 것입니다. 당백전(當百錢)은 ‘하나의 가치가 백에 해당한다’는 뜻으로, 당시 사용되던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를 지니는 고액 화폐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가치는 상평통보의 5~6배에 불과했습니다.
이 가짜 돈이 시장에 풀리자 끔찍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화폐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폭락했고, 쌀을 비롯한 모든 물건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월급을 받아도 다음 날이면 그 돈이 휴지 조각이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경제는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평범한 백성들의 고통으로 돌아왔습니다.
"에헤야 얼럴럴 거리고 방아로다" 경복궁 타령에 담긴 슬픔
이 시기, 백성들 사이에서는 구슬픈 노래 하나가 유행처럼 번져나갔습니다. 바로 ‘경복궁 타령’입니다. 이 노래는 경복궁 공사장에 강제로 끌려와 노역에 시달리던 인부들과, 당백전 발행으로 살림이 거덜 난 백성들의 애환과 슬픔이 담긴 민요입니다.
우리나라 좋은 나무는 경복궁 중건에 다 들어간다. 에헤야 얼럴럴 거리고 방아로다.
노래의 가락은 흥겹지만, 그 속에는 깊은 한과 풍자가 담겨 있습니다. ‘좋은 나무’는 단순히 궁궐을 짓는 목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라의 귀한 재물과 인재, 그리고 백성들의 피와 땀까지 모두 경복궁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희생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였습니다. 경복궁 타령의 흥겨운 가락은 역설적으로 굶주림과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백성들의 눈물을 감추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경복궁 중건은 오늘날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무너진 왕실의 권위를 회복시킨 상징적인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궁궐의 기와 한 장, 주춧돌 하나에는 당백전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고된 노역에 시달려야 했던 19세기 백성들의 깊은 슬픔이 함께 서려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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