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상업이 천시되던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오직 자신만의 상업 철학으로 부를 일구고, 그 부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얻었던 전설적인 상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 최고의 거상'이라 불리는 임상옥입니다. 그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팔아 이익을 남기는 장사꾼이 아니었습니다. '장사는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긴 그의 삶은,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경영인에게 깊은 영감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만들고, 돈보다 신용을 목숨처럼 지켰던 임상옥의 파란만장한 상도(商道)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역관의 꿈을 접고 상업에 뛰어들다
임상옥은 1779년, 의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의주는 청나라와의 무역이 이루어지던 국경 도시로, 상업 활동이 매우 활발한 곳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청나라와의 무역으로 부를 쌓은 역관(통역관)이었지만, 모함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나고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역관이 되고 싶었던 임상옥의 꿈도 좌절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18세의 나이에 생계를 위해 의주 만상(灣商, 의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상인)의 점원으로 들어가 상업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비록 낮은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그는 타고난 성실함과 비범한 상업적 감각으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장사를 통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고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겠다는 큰 포부를 품고 있었습니다.
인삼 무역의 신화,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임상옥의 이름이 조선 전체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바로 청나라와의 인삼 무역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인삼은 청나라에서 매우 고가에 팔리는 최고 인기 품목이었습니다. 임상옥은 만상의 자본을 가지고 청나라 연경(지금의 베이징)으로 인삼 무역을 떠납니다. 하지만 연경의 상인들은 조선 상인들의 이익을 독차지하기 위해 담합하여 인삼 가격을 후려치려고 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다른 상인들은 헐값에라도 인삼을 넘기려 했지만, 임상옥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는 가져온 인삼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겠다고 선언합니다. "이 인삼을 헐값에 파느니 차라리 모두 태워 그 가치를 지키겠다"는 그의 배짱과 결단에 청나라 상인들은 경악했습니다. 인삼 공급이 끊길 것을 두려워한 그들은 결국 담합을 포기하고 임상옥이 부르는 값에 인삼을 사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인삼 소각 사건'은 그의 상인으로서의 명성을 단숨에 최고로 끌어올린 전설적인 일화로 남아있습니다. 그는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는 비범한 전략을 보여준 것입니다.
상즉인(商卽人), 장사는 곧 사람이다
임상옥의 상업 철학 핵심은 **'상즉인(商卽人)', 즉 '장사는 곧 사람이다'**라는 말에 담겨 있습니다. 그는 이익을 쫓기 전에 먼저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신용을 쌓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는 큰 이익을 잃는다"고 말하며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러한 철학을 보여주는 또 다른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릇을 사러 온 한 손님이 돈이 든 전대를 실수로 놓고 갔습니다. 며칠 뒤 손님이 찾아오자 임상옥은 그 돈을 고스란히 돌려주었습니다. 손님이 감동하여 "어떻게 장사하는 사람이 이 큰돈을 보고 욕심을 내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그릇을 팔아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신의를 파는 장사꾼이기도 합니다. 당장의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의 믿음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가 임상옥의 신용을 더욱 높여주었고, 그의 가게는 더욱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부를 나누고 백성을 구하다
임상옥은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결코 자신만을 위해 부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1821년, 평안도 지역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수많은 백성이 굶주림에 시달리자,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의 구휼 활동 덕분에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순조 임금은 그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종3품의 벼슬인 '곽산군수'를 제수합니다. 상인으로서 이례적으로 높은 관직에 오른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관직 생활 중 뇌물을 받았다는 모함을 받아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귀양을 가기도 했습니다. 훗날 누명이 벗겨져 관직에 복귀했지만, 그는 권력과 부의 덧없음을 깨닫고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시와 술을 벗 삼아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돈이 아닌 사람을 남긴 진정한 상인
임상옥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부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으며, 재물은 '물처럼 평등하게 흘러야 한다(財上平如水)'는 신념을 평생 지켰습니다. 그는 장사를 통해 돈을 벌었지만, 궁극적으로 그가 남긴 것은 돈이 아닌 '사람'과 '신용'이라는 위대한 가치였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 조선 최고의 거상 임상옥. 그의 상도(商道) 정신은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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