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통상장정 개정과 방곡령 사건 조선 농민의 피땀 어린 곡식을 지키려 했던 지방관들의 치열한 분투와 역사적 진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황금빛 논밭을 바라보며 기쁨의 미소를 짓는 대신, 마른침을 삼키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백성들의 슬픈 뒷모습을 상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지금으로부터 약 130여 년 전인 19세기 후반, 조선의 농촌 사회는 당장 내일 먹을 양식이 없어 자식들이 굶어 죽어가는 끔찍한 지옥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땀 흘려 농사지은 소중한 쌀과 곡식들이 자국 백성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개항장(외국과 무역을 할 수 있도록 개방한 항구 도시)을 통해 이웃 나라 일본으로 흔적도 없이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들풀을 뜯어 먹으며 길가에 쓰러졌고, 국가의 통치 기틀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백성들의 처절한 비명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들의 관직과 목숨을 걸고 일본의 거대한 경제적 침탈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조선의 지방관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등학교 역사 시험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핵심 주제이자 구한말 경제적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던 조일통상장정 개정과 방곡령 사건의 긴박했던 전말을 살펴보려 합니다. 조선 농민들을 구하기 위해 지방관들이 펼쳤던 눈물겨운 분투와, 그 뒤에 숨겨진 불평등 조약의 냉혹한 역사를 아주 쉽고 흥미진진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의 무자비한 경제적 침탈과 조선 농촌의 황폐화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세계 무대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일본은 조선의 사정에 어두운 점을 악용하여 조일무역규칙이라는 매우 일방적이고 불리한 부속 조약을 강제로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 속에는 일본에서 수입되는 물건에 세금을 붙이지 않는 무관세와 더불어, 조선의 곡물을 아무런 제한 없이 마음대로 유출할 수 있는 무제한 곡물 유출 허용이라는 치명적인 독소 조항이 들어있었습니다. 당시 산업혁명을 거치며 급격한 도시화로 쌀 부족 현상을 겪고 있던 일본은 조선의 질 좋고 값싼 쌀을 무자비하게 긁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상인들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조선의 곡물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본국으로 실어 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 국내의 곡물 가격은 한순간에 수십 배로 폭등했고, 정작 조선의 농민들과 백성들은 돈이 있어도 쌀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비극이 도처에서 발생했습니다. 일본의 무자비한 경제적 약탈로 인해 조선의 농촌 사회는 뼈대만 남은 채 급격하게 황폐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조일통상장정 개정 관세권 확보와 방곡령 선포의 법적 발판 마련

일본의 혹독한 경제적 수탈로 인해 국가 재정이 파탄 나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Syndrome, 조선 정부는 무방비로 열려있던 조약들을 수정하기 위해 필사적인 외교적 노력을 전개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1883년, 기존의 불평등했던 조항들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조일통상장정을 새롭게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개정된 조일통상장정은 조선에게 매우 중요한 외교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우선 일본에서 들어오는 물품에 세금을 매길 수 있는 관세권(수입하거나 수출하는 물품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국가의 권리)을 확보하여 자국의 유치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방어막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기후 변화나 자연재해로 인해 국내에 심각한 식량 부족 위기가 발생할 경우, 곡물의 국외 수출을 일시적으로 전면 금지할 수 있는 방곡령 선포 권리를 조약서에 공식적으로 명시했습니다. 비록 일본의 요구로 최혜국 대우라는 불리한 조항이 함께 포함되기는 했지만, 조일통상장정의 체결은 조선이 백성들을 구하고 곡식 유출을 합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커다란 의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함경도 방곡령 사건 조병식과 지방관들이 백성을 구하기 위해 내린 결단

조일통상장정을 통해 방곡령 선포의 법적 권리를 확보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조선의 북방 지역에 거대한 기상이변과 재앙이 몰아쳤습니다. 1889년 가을, 함경도 지역에 극심한 가뭄과 냉해가 겹치면서 대규모의 흉작(기후나 자연재해로 인해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수확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밭에는 거둘 곡식이 없었고 백성들은 당장 다가올 추운 겨울을 버텨낼 양식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상인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며 함경도 전역에서 쌀과 콩을 가마니째 사들여 일본으로 유출하려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참혹한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보던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은 더 이상 조정의 처분만을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1889년 9월, 조일통상장정의 규정을 근거로 삼아 함경도 전역에 곡물의 국외 유출을 전면 금지하는 방곡령을 전격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이듬해에는 황해도 관찰사 오준영 역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황해도 지역에 방곡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나라의 주인인 백성과 농민들을 지키기 위해 지방관들이 온 힘을 다해 짜낸 눈물겨운 자구책이었습니다.

일본의 적반하장식 외교적 압박과 한 달 전 통보 조항의 무서운 올가미

조선 지방관들의 과감한 방곡령 선포는 백성들에게는 가뭄 속의 단비와 같았지만, 곡물 약탈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던 일본 상인들과 일본 정부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조치였습니다. 일본은 방곡령으로 인해 자신들의 무역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며 조선 정부를 향해 거센 외교적 압박과 무력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일본이 조선 정부를 굴복시키기 위해 내민 무서운 올가미가 바로 조일통상장정 제37조에 숨겨져 있던 독소 조항이었습니다. 해당 조항에는 조선이 방곡령을 선포할 경우, 반드시 실제 시행일로부터 한 달 전에 일본 영사관에 공식적으로 서면 포고(국가나 관청에서 어떤 내용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일)를 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이 방곡령을 내릴 때 이 한 달 전 통보 규정을 완벽하게 지키지 않았거나, 통지서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서류상 날짜에 미비한 점이 있었다는 비열한 트집을 잡았습니다. 당장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긴박한 재난 상황에서 한 달을 기다리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음에도, 일본은 조약의 문구를 무기 삼아 적반하장으로 조선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위협했습니다.

방곡령 철회와 막대한 배상금 지급이 조선 재정에 미친 치명적인 타격

강포한 일본의 군사적 위협과 집요한 외교적 공세 앞에, 청나라의 내정 간섭으로 가뜩이나 나약해져 있던 조선의 중앙 정부는 끝까지 버텨낼 힘이 없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방곡령을 즉각 철회하지 않으면 군함을 동원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고, 결국 조선 조정은 일본의 압박에 굴복하여 지방관들이 백성을 구하기 위해 내렸던 방곡령을 강제로 해제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농민들을 지키려 했던 조병식과 지방관들의 위대한 분투는 허망하게 수포로 돌아갔고, 거두어들였던 곡식들은 다시 일본 상인들의 손에 넘어가 바다를 건넜습니다.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방곡령 기간 동안 자국 상인들이 입은 경제적 손실을 받아내야겠다며 조선 정부를 향해 막대한 배상금(남에게 끼친 손해를 물어내기 위해 지급하는 돈)을 청구했습니다. 수년간의 지루한 외교 분쟁 끝에 조선 정부는 1893년, 일본에 무려 11만 원이라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돈은 당시 조선의 한 해 국가 재정을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거금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백성을 구하려 했던 정당한 주권 행사가 도리어 국가 재정을 파탄 내고 경제적 예속을 심화시키는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조일통상장정과 방곡령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자강과 주권의 무게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조일통상장정 개정과 방곡령 사건은 힘없는 나라의 백성들과 지방관들이 거대한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펼친 처절하고도 서글픈 주권 수호 운동의 기록입니다.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을 비롯한 지방관들은 썩어가는 조정의 무능함 속에서도 오직 자국의 농민과 백성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조약의 권리를 활용하여 단호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들의 분투는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경제적 약탈에 저항한 자랑스러운 역사적 자산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남긴 역사적 결말은 우리에게 매우 차갑고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법적인 권리를 조약서에 명시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국력과 주체적인 힘이 없다면 그 조약은 언제든지 강대국의 입맛에 따라 무력화될 수 있는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조선은 피눈물을 흘리며 배워야 했습니다. 오늘날 국제 사회 역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 매일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일통상장정과 방곡령 사건의 교훈을 거울 삼아, 변화하는 세계 정세를 영리하게 읽어내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자강 능력을 확립하는 것이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안녕을 지키는 유일한 방패임을 가슴 깊이 명심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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