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쉼 없이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하고 중요한 흐름을 되짚어보는 이 시간 오늘 우리가 함께 마주할 역사의 페이지는 참으로 참담하고도 뼈아픈 기억입니다. 바로 천구백육십년 삼월 십오일에 벌어진 끔찍한 국가적 범죄 삼일오 부정 선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봄기운이 완연하게 피어나고 벚꽃이 흩날릴 준비를 하던 그 아름다운 봄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차갑게 얼어붙은 채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한국 전쟁이라는 민족 최대의 참극을 겪고도 폐허 속에서 꿋꿋하게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평범하고 선량한 국민들에게 투표권이란 한 줄기 빛과도 같은 희망이었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나라의 훌륭한 지도자를 뽑아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내 아이들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는 그 간절하고 순수한 믿음이 그날 하루아침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투표소로 향하는 길목마다 총을 든 경찰과 험악한 인상의 정치 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국민들의 소중한 한 표는 권력자들의 끝없는 탐욕 앞에서 한낱 휴지 조각처럼 버려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선거 범죄를 넘어서 국가가 앞장서서 주권자인 국민을 속이고 기만한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절박했기에 당시의 권력자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온갖 추악한 수법들을 동원하여 헌법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조롱했던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이 씁쓸하고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삼일오 부정 선거의 낱낱의 진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 시대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겨보려 합니다.
권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와 자유당 정권의 비열한 음모
천구백육십년 치러진 제사대 대통령 선거와 제오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말 그대로 극심한 공포와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나이는 여든다섯 살이라는 엄청난 고령이었습니다. 지금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당시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언제 건강이 악화되어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헌법에 따르면 만약 대통령이 임기 중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될 경우 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그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고스란히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승만의 뒤를 잇기 위해서는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가 무조건 부통령에 당선되어야만 했습니다. 만약 야당인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부통령이 되고 이승만 대통령이 유고 상태에 빠진다면 권력은 하루아침에 야당으로 넘어가게 되는 끔찍한 시나리오가 자유당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상황은 자유당에게 몹시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십이 년 동안 이어진 이승만 정권의 길고 긴 독재와 부패에 국민들은 이미 단단히 화가 나 있었고 민심은 차갑게 돌아서 있었습니다. 특히 자유당 고위 간부들이 저지른 부정 축재 (권력을 이용하여 부당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엄청난 재물을 긁어모으는 행위) 는 굶주리던 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습니다. 만약 선거에서 져서 정권을 내놓게 된다면 그동안 저질렀던 온갖 불법 행위들이 낱낱이 밝혀져 감옥에 가거나 끔찍한 처벌을 받을 것이 너무나도 뻔했습니다. 게다가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강력한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은 자동으로 확정되었지만 부통령 선거만큼은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야당의 장면 후보를 이길 방법이 정상적인 투표로는 도저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단맛에 깊이 중독되어 있던 이들은 결국 정상적인 법과 원칙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고 오직 힘과 조작으로 표를 훔치겠다는 무시무시하고 치밀한 부정 선거 계획을 국가적 차원에서 은밀하게 세우기 시작합니다.
공권력의 타락과 정치 깡패가 춤추는 무법천지의 선거판
이 거대하고 끔찍한 음모의 최전선에서 행동 대장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경찰과 공무원들이었습니다.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최인규는 전국의 경찰 간부들과 지방의 시장 군수들을 비밀리에 불러 모아 이번 선거에서 자유당 이기붕 후보의 득표율을 무조건 할당된 목표치 이상으로 끌어올리라는 황당하고 강압적인 지시를 내립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공무원은 그 자리에서 즉시 해고하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과 함께 엄청난 선거 자금을 은밀하게 뿌렸습니다. 국가의 행정 조직과 세금이 특정 정당의 선거 운동을 위해 불법적으로 동원되는 최악의 관권 선거 (국가 기관이나 공무원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특정 후보가 당선되도록 부당하게 개입하는 불법 선거) 가 백주 대낮에 버젓이 벌어진 것입니다.
공무원과 경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당은 자신들의 막대한 자금력과 권력을 등에 업고 전국 각지의 악명 높은 정치 깡패들을 대규모로 끌어모았습니다. 이들은 선거 기간 내내 야당의 선거 유세장에 난입하여 마이크를 부수고 지지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등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투표일 당일에는 완장을 찬 깡패들이 투표소 주변을 험악하게 에워싸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국민들이 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지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할 야당 측 참관인들에게 억지 누명을 씌워 투표소 밖으로 쫓아내거나 골목으로 끌고 가 심한 매질을 가하여 감시의 눈을 완전히 가려버렸습니다. 투표소는 국민의 신성한 주권을 행사하는 축제의 장이 아니라 폭력과 공포가 난무하는 무법천지의 야만적인 공간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인권과 비밀 투표의 원칙을 짓밟은 기상천외한 강압 투표 수법들
삼일오 부정 선거에 동원된 수법들은 그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고 악랄하여 세계 선거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가장 대표적이고 악질적인 수법은 바로 삼인조 구인조 투표였습니다. 자유당은 유권자들을 세 명 혹은 아홉 명씩 억지로 한 조로 묶은 뒤 이들이 투표소에 갈 때 반드시 함께 이동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투표소 안에서 기표소의 휘장을 치워버려 밖에서도 누가 누구를 찍는지 훤히 보이게 만든 다음 조장 역할을 맡은 자유당 당원에게 자신이 자유당 이기붕 후보에게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눈으로 확인시켜 준 뒤에야 투표함에 표를 넣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 선거의 가장 기본적이고 숭고한 원칙인 비밀 투표의 원칙이 힘과 공포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령 유권자 (실제로는 죽었거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을 거짓으로 명부에 올려 투표에 이용하는 수법) 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이름이나 심지어 동네에 돌아다니는 강아지의 이름까지 선거인 명부에 가짜로 올려놓고 자유당 당원들이 그 사람들의 이름으로 대신 여러 번 투표를 하는 기막힌 짓을 저질렀습니다. 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파악된 동네의 사람들에게는 아예 투표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인 투표 통지표 자체를 나누어 주지 않아 투표장에 가지도 못하게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렸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농민들과 서민들은 뻔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불법 행위들을 보면서도 무서운 경찰과 깡패들의 협박에 못 이겨 피눈물을 삼키며 원치 않는 후보에게 억지로 표를 던져야만 했습니다.
미리 채워진 투표함과 어둠 속에서 벌어진 추악한 개표 조작극
투표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과 강압만으로는 도저히 안심할 수 없었던 자유당은 아예 선거의 판 자체를 통째로 조작하는 상상 초월의 범죄를 저지릅니다. 바로 사전 투표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미리 특정 후보를 찍어둔 종이를 투표함에 무더기로 집어넣는 불법 행위) 라는 경악스러운 수법이었습니다. 그들은 투표 당일 아침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도착하기도 전인 이른 새벽에 전체 유권자 숫자의 무려 사십 퍼센트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가짜 투표용지에 이승만과 이기붕을 찍어 미리 투표함 속에 차곡차곡 숨겨 넣었습니다. 이미 사십 퍼센트를 먹고 들어가는 이 어처구니없는 조작극 덕분에 투표함 안은 민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짜 표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투표가 모두 끝난 뒤 시작된 개표 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추악한 범죄 영화를 방불케 했습니다. 개표가 한창 진행되던 중 갑자기 개표장의 전기가 모두 나가버리고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짜기라도 한 듯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그 혼란스럽고 어두운 틈을 타서 자유당 측 행동 대원들은 미리 준비해 둔 가짜 투표함으로 원래의 진짜 투표함을 통째로 바꿔치기하는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또한 불이 켜져 있을 때도 개표 사무원들은 손놀림을 현란하게 움직여 피아노 치기 (개표 과정에서 다른 후보의 표를 마치 피아노 건반을 치듯 교묘하게 자신의 표 뭉치에 끼워 넣는 조작) 수법을 뻔뻔하게 자행했습니다. 야당 후보에게 찍힌 소중한 표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엉뚱하게도 자유당 후보의 득표 뭉치 속으로 교묘하게 섞여 들어갔고 누구도 이를 제지하거나 항의할 수 없는 살벌한 분위기가 개표장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백십오 퍼센트라는 수학적 기적과 조작의 한계를 넘어선 황당한 자멸
이렇게 국가 조직을 총동원하여 치밀하고도 무식하게 부정 선거를 저지른 결과 투표가 끝난 후 자유당 지도부는 그야말로 멘탈이 붕괴되는 기상천외하고 황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억지로 가짜 표를 구겨 넣고 투표함을 무식하게 바꿔치기하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유권자 숫자보다 투표소에서 나온 투표용지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지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 이기붕 후보의 득표율이 무려 백십오 퍼센트를 기록하는 수학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무지한 국민이라도 단번에 눈치챌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치명적인 조작의 증거였습니다.
당황한 자유당 중앙당은 급히 각 지역의 경찰서장과 개표 책임자들에게 긴급 전화를 돌려 이기붕의 득표율을 칠십 퍼센트에서 팔십 퍼센트 사이로 자연스럽게 낮추어 발표하라는 참으로 코미디 같은 웃지 못할 지시를 내리게 됩니다. 투표수를 늘리기 위해 온갖 범죄를 저질렀던 이들이 이제는 오히려 표가 너무 많아서 자신들의 조작을 들킬까 봐 덜덜 떨며 투표용지를 불태우거나 강물에 내다 버려야 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완벽하게 권력을 훔치려던 그들의 끝없는 탐욕은 결국 그들의 지능적인 한계와 뻔뻔함을 스스로 온 세상에 폭로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 황당한 개표 결과는 꾹꾹 눌러 참아왔던 국민들의 거대한 분노에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불을 지피는 폭약이 되고 말았습니다.
빼앗긴 권리를 향한 분노의 불꽃 사일구 혁명의 위대한 서막이 오르다
거짓과 폭력으로 얼룩진 삼일오 부정 선거의 끔찍한 실상을 목격한 국민들의 인내심은 마침내 한계점을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선거 당일 저녁부터 억울하게 투표권을 빼앗긴 경상남도 마산의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경찰은 평화롭게 시위하는 시민들을 향해 잔인하게 진짜 총탄을 발사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시위 도중 행방불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끔찍한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참혹한 시신으로 떠오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승만 정권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화산처럼 전국으로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삼일오 부정 선거라는 최악의 권력 연장 수법은 부패한 정권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빼앗긴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피를 흘리며 맞서 싸운 위대한 사일구 혁명의 거센 물결은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승만 정권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십이 년에 걸친 길고 어두웠던 독재의 밤을 끝냈습니다. 삼일오 부정 선거의 뼈아픈 역사는 우리에게 아무리 강대한 권력이라도 민심을 거스르고 주권자인 국민을 속이려 든다면 결국 국민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너무나도 평범하지만 무거운 진리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투표라는 소중한 권리는 수십 년 전 부정과 불의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평범한 시민들의 숭고한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거룩하고 빛나는 유산임을 우리 모두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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