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어두운 그늘 속에는 언제나 대중의 시선을 빼앗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가 숨어 있었습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열망이 뜨겁게 타오르던 그 시기 정권은 총칼 대신 스크린과 그라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치밀하게 설계한 우민화(어리석고 바보스럽게 만듦) 전략의 실체는 무엇이었을지 그때 그 시절의 기록 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가 보겠습니다.
198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시계바늘은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격랑 속에서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국민들의 거센 민주화 요구와 정당성에 대한 비판을 잠재워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무력으로 입을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대중의 관심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릴 획기적인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문화 통치 전략이었습니다.
3S 정책의 실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스크린(Screen)과 스포츠(Sports) 그리고 섹스(Sex)였습니다. 신군부 세력은 국민들이 사회 부조리나 정치적 탄압에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이 세 가지 요소를 대중문화 전면에 적극적으로 배치했습니다. 텔레비전 보급이 급증하고 컬러 방송이 전면 도입되면서 안방극장은 순식간에 자극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콘텐츠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정권은 대중이 현실의 부조리에 분노하는 대신 가십거리와 오락거리에 열광하기를 바랐습니다.
이 전략의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자 국민의 시선을 완벽하게 분산시킨 사건은 바로 프로야구의 출범이었습니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순식간에 온 국민을 그라운드로 불러 모았고 지역 감정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구단 운영 방식은 대중의 정치적 에너지를 스포츠 열기로 치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퇴근 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응원전에 몰두했으며 야구장은 정권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거대한 배출구처럼 기능했습니다.
스포츠와 함께 대중문화계에도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쳤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국풍81 축제가 있었습니다. 1981년에 여의도 광장에서 대규모로 개최된 이 행사는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는 명목 아래 기획되었으나 실상은 대중의 정치적 불만을 잠재우고 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거대한 관제 문화 쇼였습니다. 젊은이들의 가요제와 전통 예술 공연이 어우러진 이 축제는 대중에게 일시적인 해방감을 주면서도 정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이중적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우민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지형을 크게 뒤틀어 놓았습니다. 대중이 정치와 사회 문제에 침묵하는 사이 민주주의는 깊은 침체기에 빠졌고 시민 사회의 성장은 심각하게 유예되었습니다. 비록 프로야구의 부흥이나 컬러 텔레비전의 보급처럼 대중문화의 양적 성장을 이끌어낸 측면도 존재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통치 목적의 순수성 부재는 역사적으로 뼈아픈 대목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1980년대의 3S 정책을 단순한 대중문화의 발전사로 기억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역사가 거듭될수록 권력자는 언제나 대중의 시선을 분산시킬 강력한 도구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외면하고 대중문화가 비판적 기능을 상실할 때 사회는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과거 정권이 스포츠와 문화를 이용해 국민의 눈을 가리려 했던 역사를 직시하고 오늘날 우리는 과연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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