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강바닥과 홍수의 공포에서 시작된 원대한 국가 개조 프로젝트
예로부터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줄기들은 우리 민족의 삶을 지탱해 온 든든한 젖줄이자 생명의 근원이었습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4대강은 수천 년 동안 농부들의 타는 목마름을 축여주고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중요한 길목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강은 언제나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만 보여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마다 여름철 장마와 태풍이 몰아칠 때면 붉은 흙탕물이 제방을 넘어 농경지와 가옥을 무자비하게 집어삼켰고, 봄과 가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쩍쩍 갈라진 논바닥을 보며 농민들은 까맣게 타들어 가는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습니다. 물이 부족할 때는 한 방울의 물이 아쉬웠고, 물이 넘칠 때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끔찍한 홍수의 공포가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이러한 자연재해 앞에서 강을 완벽하게 다스리고 통제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원대한 꿈은 역대 모든 정부가 안고 있던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그리고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이 오래된 숙제를 단번에 해결하겠다며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국가 개조 프로젝트의 청사진을 국민들 앞에 펼쳐 보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도 찬사와 비판의 한가운데 서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치열하고도 논쟁적인 역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공약 한반도 대운하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의 전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시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후보는 과거 현대건설 최고경영자로서 중동의 사막에서 대규모 건설 공사를 진두지휘했던 경험과, 서울시장 재직 시절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허물고 청계천을 복원해 낸 성공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는 강력한 추진력을 앞세워 한반도 대운하(배가 다닐 수 있도록 땅을 파서 만든 인공 물길) 건설을 제1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한강과 낙동강을 파내고 두 강 사이에 거대한 터널을 뚫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화물선과 유람선이 오가게 만들겠다는 엄청난 구상이었습니다.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관광 산업을 발전시켜 경제를 살리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이었지만, 학계와 환경 단체 그리고 야당은 경제성이 턱없이 부족하며 한반도의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할 것이라며 거세게 반대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대운하 반대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전국을 뒤덮으면서 취임 초기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그해 6월 국민이 반대한다면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을 철회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운하 건설의 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운하 철회 선언 이후 불과 6개월 만인 2008년 12월, 정부는 기후 변화에 대비하고 홍수와 가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대규모 하천 정비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하게 됩니다.
가뭄 해결과 홍수 예방을 내세운 22조 원 규모의 초대형 토목 공사
새롭게 발표된 4대강 사업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의 바닥을 깊게 파내어 물그릇을 키우고, 강을 가로막는 거대한 둑을 세워 풍부한 수자원을 확보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았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사업의 명분은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기후 변화로 인해 점차 잦아지고 있는 극심한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여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강바닥에 쌓인 오염 물질을 제거하고 수질을 깨끗하게 개선하겠다는 목표였으며, 셋째는 강의 생태계를 복원하고 강변에 자전거 길과 공원을 조성하여 국민들의 여가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침체된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건설 공사를 일으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무려 2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을 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습니다. 4대강 전체에 걸쳐 강바닥의 모래와 흙을 파내는 대규모 준설(하천이나 항만 등의 바닥에 쌓인 흙이나 모래를 파내는 일) 작업이 진행되었고, 파낸 흙의 양은 남산의 몇 배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깊어진 강물에 물을 가두기 위해 4대강 본류에 총 16개의 거대한 보(하천의 물을 늦추거나 고이게 하기 위하여 둑을 쌓아 막아 놓은 시설)를 건설했습니다. 또한 강변을 따라 국토를 종주할 수 있는 수천 킬로미터 길이의 자전거 도로가 새롭게 깔렸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단일 국책 사업으로는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많은 돈이 투입된 초대형 토목 공사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것입니다.
강물의 흐름을 막는 인공 구조물 건설과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거센 반대의 목소리
정부의 야심 찬 발표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을 향한 사회적 반발은 한반도 대운하 논란 때 못지않게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환경 단체와 생태학자들은 정부의 계획이 강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강을 완전히 죽이는 행위라고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자연스러운 하천 생태계의 핵심은 굽이치며 흐르는 물의 흐름과 강바닥에 쌓인 모래, 그리고 그 주변에 형성된 습지에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모래와 자갈을 거치며 스스로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16개의 거대한 보를 세워 물길을 가로막으면 강은 흐름을 잃고 거대한 인공 호수로 변해 결국 수질이 심각하게 오염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졌습니다. 게다가 강바닥을 포크레인으로 무자비하게 파헤치면 수많은 물고기와 철새들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한반도의 생물 다양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습니다.
야당과 시민 사회의 반대 논리 중 가장 날카로웠던 부분은 이 사업이 사실상 한반도 대운하의 사전 준비 단계가 아니냐는 의혹이었습니다. 홍수를 예방하고 가뭄을 해결하려면 물이 부족한 산간 계곡이나 강의 상류, 혹은 지류를 정비해야 하는데 정부는 정작 물이 풍부한 4대강의 본류만 엄청나게 깊게 파내고 있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배가 다닐 수 있도록 수심을 깊게 유지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본류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어 보를 건설하고 강바닥을 파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4대강 사업과 대운하는 명백히 다르다며 반대 여론을 일축했고,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이상 공사를 늦출 수 없다며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국가 예산을 둘러싼 속도전 밀어붙이기와 국회에서의 치열했던 예산 통과 전쟁
4대강 사업이 역사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민주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무시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전으로 사업이 강행되었다는 점입니다. 통상적으로 수조 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국가 인프라 사업은 수년에 걸친 환경 영향 평가와 철저한 예비타당성조사(대규모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경제성과 필요성을 미리 검증하는 제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재해 예방 사업이라는 예외 조항을 활용하여 국가 재정법의 원칙을 피하거나 법적 절차를 대폭 단축시켰습니다.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이 확정되고 공사가 시작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야간에도 강력한 조명을 켜놓고 24시간 공사를 강행하는 이른바 속도전이 4대강 전역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 예산을 심의하고 통과시켜야 하는 국회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거대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임기 내에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예산안의 신속한 통과를 시도했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하고 바리케이드를 치며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의원들 간의 고성과 몸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멱살잡이와 폭력 사태가 생중계로 국민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결국 여당은 다수의 힘을 앞세워 단독으로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고, 막대한 자금과 행정력이 집중된 4대강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인 2012년에 사실상 대부분의 공사를 마무리 짓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단 3년 만에 한반도의 거대한 강줄기 네 개의 모습이 완전히 뒤바뀌는 전무후무한 토목 공사가 끝을 맺은 것입니다.
매년 반복되는 녹조 현상과 가뭄 피해의 진실 사업이 남긴 엇갈린 결과와 깊은 상흔
공사가 완료된 후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성과와 실패의 엇갈린 평가는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습니다. 사업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4대강 본류 주변의 홍수 피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강변에 조성된 자전거 도로와 캠핑장이 국민들의 훌륭한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또한 가뭄이 심할 때 보에 가둬둔 물이 비상 식수원이나 농업용수로 활용된 사례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당초 환경 단체들이 경고했던 부작용들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수질 악화였습니다. 보에 갇혀 흐름이 느려진 강물은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빛을 받으며 심각한 부영양화(강이나 호수에 영양 물질이 많아져 조류가 급격히 번식하는 현상)를 일으켰습니다. 강물 전체가 마치 짙은 녹색 페인트를 풀어놓은 것처럼 변해버렸고, 사람들은 이를 조롱 섞인 어조로 녹조라떼라고 불렀습니다. 녹조에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은 식수원의 안전을 위협했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해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 또한 4대강 본류에 물을 가득 채워두었지만, 정작 물이 가장 필요한 산간 지역의 농경지까지 물을 끌어올 송수관로와 펌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정작 가뭄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뼈아픈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수질 개선과 수자원 확보라는 핵심 목표가 심각하게 흔들리면서 사업의 정당성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 국책 사업이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역사적 교훈
이명박 정부가 물러난 이후 새로 들어선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치는 동안 4대강 사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사원의 표적이 되었고 정치적 공방의 핵심 소재로 활용되었습니다. 어느 정부에서는 보를 해체하여 자연성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고 결정했고, 또 다른 정부에서는 수자원 활용을 위해 보를 유지해야 한다며 앞선 결정을 뒤집는 등 혼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수많은 역사적 기록과 데이터 교차 검증을 통해 4대강 사업이 민주적 합의 절차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강행된 측면이 크며 자연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22조 원이라는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이 거대한 토목 공사는 우리에게 매우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역사적 교훈을 던져줍니다. 자연은 한 번 파괴되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국토의 핏줄인 강을 다루는 정책은 한 정권의 정치적 성과나 최고 권력자의 개인적인 신념에 의해 졸속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됩니다. 충분한 과학적 검증과 오랜 시간에 걸친 사회적 합의 과정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장기적인 철학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수자원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우리는 4대강 사업이라는 아픈 역사를 통해 똑똑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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