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모노가타리, 세계 최초 소설을 쓴 여자 무라사키 시키부 이야기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시작된 이야기

무라사키 시키부는 970년대 무렵 학자 가문에서 태어난 헤이안 시대의 궁녀입니다. 본명은 전해지지 않으며 궁중에서는 아버지의 관직명을 딴 이름으로 불렸고 무라사키라는 이름은 훗날 그녀가 쓴 작품 속 여주인공에서 따와 후대에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일본 여성은 관행적으로 한문을 배우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학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어깨너머로 한문을 익혀 남자 형제보다도 빠르게 글을 깨우쳤다고 전해집니다. 오빠가 한문 경전을 배울 때 곁에서 함께 듣던 그녀가 오빠보다 먼저 내용을 이해하자 아버지가 그녀를 두고 아들이 아니라 딸로 태어난 것이 안타깝다는 말을 남겼다는 일화까지 전해질 정도로 그녀의 학문적 재능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습니다. 그녀는 이십 대 후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해 딸을 낳았지만 결혼한 지 채 삼 년이 지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갑작스럽게 홀로 남겨진 그녀는 현실의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훗날 세계 최초의 소설로 평가받는 겐지모노가타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상실감에서 비롯된 글쓰기가 훗날 일본 문학사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지금 보아도 놀라운 일입니다. 남편과 사별한 뒤 그녀가 느꼈을 상실감과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 배출을 넘어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감정을 그려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실제로 그녀가 궁중 생활을 하며 남긴 또 다른 기록인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에는 화려한 궁정 생활 이면에 자리한 그녀 자신의 고독하고 예민한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소설 속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여자들만 쓰던 문자로 쓰인 소설

무라사키 시키부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새롭게 자리 잡고 있던 가나 문자가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 이전까지 일본에는 고유 문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 쓰는 방식으로 자국어를 표기했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 한자를 흘려 쓰는 방식에서 발전한 히라가나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공식 문서에는 여전히 한자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히라가나는 여자들이나 쓰는 글자라는 뜻에서 온나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낮잡아 여겨졌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천대받던 히라가나 덕분에 한문 교육에서 소외되어 있던 여성들이 오히려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얻게 되었습니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한문에도 능했지만 겐지모노가타리는 바로 이 히라가나를 이용해 집필했고 결과적으로 남성 중심의 한문학과는 전혀 다른 섬세한 심리 묘사와 감정 표현이 담긴 새로운 문학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활동한 세이 쇼나곤을 비롯해 여러 여성 작가들이 히라가나로 뛰어난 작품을 남긴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여성을 배제하려던 문자 질서가 오히려 여성 문학의 황금기를 여는 뜻밖의 계기가 된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 여성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후지와라 가문의 정치적 계산도 한몫했습니다. 당시 후지와라 가문은 자신의 딸을 천황의 후비로 들여보낸 뒤 그 곁에 재능 있는 여성들을 시녀로 배치해 화려한 사교 문화를 형성하도록 했는데 이 과정에서 뛰어난 글재주를 지닌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궁중에 모여들어 서로 경쟁하듯 작품을 남기는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권력자의 후원으로 완성된 대작

무라사키 시키부가 처음부터 화려한 후원을 받으며 집필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종이조차 귀했던 시절이라 누군가 종이를 구해다 줄 때마다 조금씩 이야기를 써 내려갔고 주변 동료들과 서로 글을 돌려 읽으며 의견을 나누는 소박한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의 글솜씨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의 딸이자 중궁이었던 쇼시의 가정교사로 발탁되어 궁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미치나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안정적으로 집필을 이어갈 수 있었고 마침내 오십사 첩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겐지모노가타리를 완성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1000년 무렵부터 쓰이기 시작해 1012년경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권력자의 후원이 없었다면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작품이 완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문학과 정치권력이 맺은 이 특별한 관계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물론 후원의 이면에는 자신의 딸이 머무는 궁중 사교 모임에서 화제가 될 만한 이야기를 원했던 미치나가의 정치적 계산도 어느 정도 깔려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실제로 미치나가는 딸 쇼시의 처소를 당대 최고의 문화 살롱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심이 있었고 이야기 솜씨가 뛰어난 무라사키 시키부를 곁에 두는 것은 그런 목적에도 잘 들어맞는 선택이었습니다. 그가 종종 직접 종이와 먹을 챙겨주며 집필을 독려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이 후원 관계는 상당히 긴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렘 이야기를 넘어선 섬세한 심리 묘사

겐지모노가타리는 얼핏 보면 주인공 히카루 겐지가 수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로 단순화될 수 있지만 실제 작품의 진짜 힘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이 작품이 최초의 근대적 소설로까지 평가받는 이유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내면 심리를 정교하게 파고드는 서술 방식 때문입니다. 인물들의 감정 변화와 갈등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이 기법은 이전까지의 설화나 전기물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서사 방식이었습니다. 등장인물이 사백 명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 작품은 단순히 인물 수가 많다는 점을 넘어 각 인물마다 뚜렷한 개성과 내면의 갈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평가를 받습니다. 소설 속에는 겐지가 오랜 외박 끝에 집에 돌아왔을 때 질투한 시녀들이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는데 정작 안주인이 직접 나와 온화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하는 장면처럼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선을 포착한 대목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연애와 영광 그리고 몰락과 권력 다툼까지 아우르는 이 작품은 결국 화려한 궁정 생활의 이면에 자리한 인간의 고독과 상실을 조명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스포일러에 유의해서 말하자면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젊은 시절 화려했던 겐지의 영광은 서서히 빛을 잃고 그의 사후 세대 인물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인생의 무상함이라는 주제가 한층 짙어지는데 이 마지막 부분은 지금까지도 완결 여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할 만큼 여운이 깊은 결말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이야기 후반부를 장식하는 두 청년의 이야기는 겐지 생전의 화려했던 사랑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쓸쓸하고 허무한 정서를 띠고 있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시간이 흐르며 점차 깊은 사색과 무상함 쪽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천 년을 건너 세계 문학이 된 이야기

겐지모노가타리는 문헌으로 처음 그 존재가 언급된 지 약 백오십 년이 지난 헤이안 시대 말기에 이르러 화려한 채색 그림을 곁들인 두루마리 형태로도 제작되었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후 이 작품은 일본 국내에 머물지 않고 스무 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읽히는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천 년도 더 된 과거에 한 여성이 개인적인 슬픔을 달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는 사실은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유럽에서 근대적 의미의 소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까지는 이보다 수백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헤이안 시대 궁정에서 이런 형태의 서사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게 다가옵니다. 이는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희소성 때문이 아니라 인간 내면을 향한 섬세한 통찰이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문은 현대 일본인들도 곧바로 읽어내기 어려울 만큼 고어체로 쓰여 있어 오늘날에는 여러 현대어 번역본을 통해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유명 작가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 새롭게 번역한 판본이 여러 종류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 여성의 글쓰기가 남긴 것

무라사키 시키부의 삶과 겐지모노가타리를 함께 돌아보면 한 개인의 상실감에서 출발한 창작이 결국 인류 문학사의 흐름 자체를 바꾸어놓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여성에게 한문 교육의 기회조차 제한되었던 시대에 그녀는 오히려 천대받던 가나 문자를 무기 삼아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섬세한 인간 심리의 세계를 열어젖혔습니다. 남편을 잃은 슬픔과 신분의 제약이라는 이중의 한계 속에서 탄생한 이 작품이 세계 최초의 소설이라는 평가까지 얻게 된 것은 결국 인간의 감정을 진실하게 들여다보려 했던 한 작가의 순수한 열망이 시대의 벽을 넘어선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름조차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한 여성이 남긴 이야기가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문학이 지닌 힘이 신분이나 시대의 제약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음을 잔잔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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