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자기 나라의 시작을 하늘과 연결 지은 이야기가 무척 많습니다. 우리에게 단군 이야기가 있듯이 일본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자손이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조금 특별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건국신화를 옛날이야기로 남겨둔 사이에 일본은 그 신화를 국가의 공식 달력과 국경일 그리고 전쟁의 명분으로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일본에는 2월 11일이라는 건국기념일이 있는데 이 날짜의 뿌리는 놀랍게도 2600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 인물의 즉위식입니다. 그 인물이 바로 진무 천황입니다. 과연 일본은 정말 신의 후손이 세운 나라일까요. 일본 건국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디까지가 이야기이며 어디부터가 역사인지 차근차근 따라가 보겠습니다.
태양신 아마테라스와 하늘에서 내려온 손자
일본 건국신화의 출발점은 아마테라스라는 태양의 신입니다. 이야기는 그보다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남매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부부가 되어 일본 열도를 이루는 섬들을 만들었습니다. 이 둘은 수많은 신을 낳았지만 이자나미는 불의 신을 낳다가 화상을 입고 목숨을 잃습니다. 아내를 되찾으려 저승까지 따라간 이자나기는 끝내 실패하고 도망쳐 나와 몸을 씻는데 이때 왼쪽 눈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마테라스입니다. 오른쪽 눈에서는 달의 신 쓰쿠요미가 코에서는 바다와 폭풍의 신 스사노오가 태어났습니다.
아마테라스는 하늘 세계인 다카마가하라를 다스리는 주신이 되었습니다. 동생 스사노오의 난폭한 행동에 지쳐 동굴에 숨어버리자 세상이 온통 어둠에 잠겼다는 이야기는 일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장면입니다. 이 태양신이 지상을 다스리라며 손자 니니기를 내려보낸 사건이 이른바 천손강림입니다. 니니기는 규슈 남부의 다카치호 봉우리에 내려왔고 거울과 검과 곡옥이라는 세 가지 보물을 함께 받았습니다. 이 세 가지가 오늘날까지 일본 황실의 상징으로 이어지는 삼종신기입니다. 니니기의 증손자가 바로 초대 천황으로 기록된 진무입니다. 일본 건국신화가 천황가를 태양신의 직계 후손으로 설정한 구조가 여기서 완성되는 셈입니다.
규슈에서 야마토까지 이어진 진무 천황의 동쪽 원정
진무 천황의 이야기는 신화라기보다 한 편의 원정기에 가깝습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따르면 그는 규슈의 휴가국 지금의 미야자키현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45세가 되던 해에 그는 형제들과 함께 동쪽으로 떠나기로 합니다. 나라를 다스리기에 더 좋은 땅이 동쪽에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세토내해를 따라 몇 해에 걸쳐 이동한 끝에 지금의 오사카 지역에 상륙했지만 그곳에서 나가스네히코라는 강력한 토착 세력의 저항에 부딪힙니다. 이 전투에서 진무의 형 이쓰세가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습니다.
여기서 진무는 흥미로운 판단을 내립니다. 태양신의 자손이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싸웠기 때문에 졌다고 해석하고 배를 돌려 남쪽으로 크게 우회한 것입니다. 기이반도를 돌아 구마노 지역에 상륙한 그는 험한 산길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이때 하늘에서 내려온 세 발 달린 까마귀 야타가라스가 나타나 길을 안내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에 새겨진 그 까마귀가 바로 이 새입니다. 산을 넘어 야마토 분지로 들어간 진무는 마침내 나가스네히코를 무너뜨리고 지금의 나라현 가시하라 지역에 궁을 세웁니다. 그가 이곳에서 즉위한 해가 기원전 660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 건국신화는 이 순간을 나라가 시작된 날로 못 박았습니다.
기원전 660년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야기 자체는 그럴듯하지만 기록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일본서기는 진무 천황이 127세까지 살았다고 적었고 고사기는 137세라고 적었습니다. 뒤를 이은 초기 천황들도 하나같이 100세를 훌쩍 넘깁니다. 게다가 2대부터 9대까지 여덟 명의 천황은 이름과 계보만 있을 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은 있는데 사건이 없는 이상한 공백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기원전 660년일까요. 근대 일본의 역사학자 나카 미치요가 내놓은 설명이 지금까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고대 동아시아에는 신유년마다 큰 변혁이 일어나고 특히 1260년마다 나라를 뒤흔드는 대혁명이 일어난다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를 신유혁명설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서기가 편찬되던 시기를 기준으로 이 1260년을 거꾸로 계산해 올라가면 정확히 기원전 660년 신유년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 진무 천황의 즉위 연도는 역사 기록이 아니라 계산으로 만들어진 숫자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실제 인물들의 재위 기간을 이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니 초기 천황들의 수명이 비현실적으로 길어졌다는 설명도 자연스럽게 따라 나옵니다. 일본 건국신화의 연대는 이렇게 목적을 가지고 설계된 구조물이었습니다.
고고학이 보여주는 그 시절 일본 열도의 진짜 모습
기원전 660년 무렵의 일본 열도는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고고학이 알려주는 그림은 신화와 상당히 다릅니다. 이 시기는 조몬 시대 말기에서 야요이 시대 초기로 넘어가는 무렵입니다. 사람들은 토기를 빚고 사냥과 채집으로 살았으며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통해 이제 막 벼농사가 전해지던 단계였습니다. 통일된 왕조는커녕 작은 마을 단위의 사회가 흩어져 있던 시기입니다. 중앙집권 국가를 세우고 궁전에서 즉위식을 치를 만한 조건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문헌으로 교차 검증이 가능한 일본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서기 57년 중국 후한의 광무제가 규슈 북부의 작은 나라 왕에게 금으로 만든 도장을 내렸다는 내용입니다. 이 금인은 에도 시대에 실제로 발견되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107년에는 왜의 왕이 후한에 사신을 보냈고 3세기에는 히미코라는 여왕이 다스린 야마타이국 이야기가 중국 기록에 등장합니다. 진무 천황이 즉위했다는 시점보다 700년 이상 늦은 시기에도 일본은 여전히 여러 소국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 역사학계에서 실재를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는 천황은 10대 스진 천황부터라는 견해가 정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진무 천황은 실존 인물의 기억들이 뒤섞여 후대에 만들어진 상징적 시조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야기 전체가 허공에서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규슈에서 출발해 세토내해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 뒤 야마토 분지에 자리를 잡는다는 동선은 실제로 야마토 정권이 형성되는 과정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친 세력 이동과 정복의 기억이 한 사람의 영웅담으로 압축되었을 가능성을 많은 연구자가 열어두고 있습니다. 신화를 그대로 믿는 것도 통째로 버리는 것도 정답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메이지 정부가 진무 천황을 다시 불러낸 이유
여기까지만 보면 일본 건국신화는 그저 오래된 옛이야기로 남을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무사들이 실권을 쥐고 있던 수백 년 동안 천황은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고 진무 천황도 학자들 사이에서나 언급되는 존재였습니다. 상황을 완전히 바꾼 것이 1868년의 메이지 유신입니다.
새 정부는 무사 정권을 무너뜨리고 천황을 국가의 중심에 세워야 했습니다. 그 명분으로 꺼내 든 것이 바로 진무 천황이었습니다. 왕정복고를 선언한 문서에는 진무 천황이 나라를 세우던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취지의 문구가 들어갔습니다. 1872년에는 진무 천황의 즉위일을 기념하는 기원절이 만들어졌고 이듬해 양력이 도입되면서 그 날짜가 2월 11일로 확정되었습니다. 1889년에는 가시하라 지역에 진무 천황을 모시는 가시하라 신궁이 세워졌습니다. 기원전 660년을 원년으로 삼는 황기라는 연호 계산법도 이때 공식화되었습니다. 하나의 핏줄이 끊긴 적 없이 이어져 왔다는 만세일계 관념은 이렇게 근대 국가의 통치 논리로 재탄생했습니다. 일본 건국신화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라 국민이 배워야 할 역사 교과서의 첫 장이 되었습니다.
신의 후손이라는 이야기가 맞은 결말과 오늘의 일본
신화를 국가의 뼈대로 삼은 결과는 1940년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황기로 계산하면 이 해가 2600년이 되는 해였고 일본 정부는 전국적인 대규모 기념행사를 벌였습니다. 이미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천황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놓고 온 세상을 하나의 지붕 아래 둔다는 구호가 침략을 정당화하는 언어로 쓰였습니다. 신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 뒤 일본은 패전했습니다.
1946년 첫날 쇼와 천황은 스스로 신이 아니라고 밝히는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천황과 국민의 관계가 신화에 기대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원절도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66년 일본은 이름을 바꿔 2월 11일을 건국기념의 날로 되살렸고 지금도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신화가 역사로 굳어졌다가 다시 신화로 돌아가는 과정을 한 나라가 통째로 겪은 셈입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본 건국신화 자체는 문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유산입니다. 태양신과 삼종신기와 세 발 까마귀로 이어지는 상징 체계는 지금도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 끝없이 변주될 만큼 생명력이 강합니다. 신화를 가진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신화를 검증 불가능한 역사로 못 박고 그것을 근거로 다른 나라를 대했을 때 벌어졌습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무 천황이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과 그 이야기 속에 규슈에서 기나이 지역으로 세력이 이동한 실제 기억이 담겨 있을 가능성은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신화는 사실 기록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싶어 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일본은 신의 후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직한 답은 아마도 이것일 겁니다. 신의 후손은 아니지만 그렇게 믿기로 한 사람들이 만든 나라라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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