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시대, 일본과의 미묘한 줄다리기 외교

통일신라와 발해가 공존했던 남북국시대, 동아시아의 정세는 한반도와 중국의 관계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바다 건너 일본 역시 이 역동적인 시대의 주요 행위자였습니다. 특히 통일신라와 발해는 각기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일본과 때로는 긴장 속에서, 때로는 우호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복잡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 백제 멸망이라는 공동의 아픔을 겪은 후 서먹해진 통일신라와 일본, 그리고 새로운 동맹을 통해 당나라와 신라를 견제하려 했던 발해와 일본. 이들의 관계는 오늘날 한일 관계의 원류를 되짚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역사적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이제부터 남북국시대 두 나라가 일본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불편한 이웃이었던 통일신라와 일본은 견제와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가장 껄끄러운 상대 중 하나는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백제와 매우 가까운 우방이었으며,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대규모 지원군을 파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백강 전투에서 일본의 지원군은 대패했고,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에게 큰 충격과 위기감을 안겨주었으며, 자신들의 오랜 동맹을 무너뜨린 신라에 대한 적대감과 경계심을 갖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통일 직후 신라와 일본의 관계는 냉랭했습니다. 일본은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자신들을 침공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국방을 강화하고 사신 파견을 중단했습니다. 신라 역시 일본의 이러한 태도를 경계하며 외교 관계는 한동안 경색(굳어 막힘) 국면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양국은 정치적 긴장 관계와는 별개로 실리적인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신라의 발전된 문물과 불교문화는 여전히 일본에게 매력적이었고, 양국 상인들은 비공식적인 교역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특히 8세기 후반부터는 점차 공식적인 사절단이 오가며 외교 관계가 일부 회복되기도 했습니다. 신라의 장보고가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장악했을 때는 일본 상인들이 활발하게 드나들며 교역의 황금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통일신라와 일본의 관계는 정치적 긴장과 경제적 실리가 공존하는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새로운 동맹이었던 발해와 일본은 전략적 우호 관계를 맺었습니다.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며 건국된 발해는 신라, 당나라와 대립하는 구도 속에서 외교적 고립을 타개할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이때 발해가 주목한 것이 바로 바다 건너 일본이었습니다. 일본 역시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발해의 등장은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상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727년, 발해는 처음으로 일본에 사신을 보내며 공식적인 외교 관계의 문을 열었습니다. 고구려의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발해와 신라를 견제할 파트너가 필요했던 일본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발해와 일본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발해는 건국 초기부터 멸망할 때까지 총 34회에 걸쳐 일본에 사절단, 즉 견일본사를 파견했습니다. 이는 당시 교통 기술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일 정도로 빈번한 교류였습니다. 발해는 일본에 담비 가죽, 인삼, 꿀과 같은 특산물을 수출하고, 일본으로부터는 비단, 면, 황금 등을 수입하며 활발한 경제 교류를 펼쳤습니다. 문화적으로도 발해의 음악과 무용이 일본 궁정에서 큰 인기를 끄는 등 깊은 유대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이처럼 발해와 일본의 동맹은 '신라와 당나라 견제'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형성된 전략적 동맹 관계였으며, 이는 남북국시대 동아시아 외교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을 이루었습니다.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목적을 향한 외교술을 펼쳤습니다. 결론적으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와 발해는 일본과 각기 다른 방식의 외교를 펼쳤습니다. 통일신라는 백제 멸망이라는 과거사로 인해 일본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문화적 교류의 끈을 놓지 않는 실리 외교를 추구했습니다. 반면, 발해는 건국 초기부터 일본과 손을 잡고 신라와 당나라를 견제하는 전략적 동맹 관계를 구축하여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꾀했습니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의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각 국가가 자신들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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