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붕당 정치의 전개와 변질에 대해서

조선 시대의 붕당(朋黨) 정치는 오늘날의 정당 정치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학문적,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학자(사림)들이 모여 국가 정책을 논의하고 서로를 견제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대립은 점차 변질되어, 나라의 안위보다는 오직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변해갔습니다.

## 1. 붕당의 시작: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등장 (선조 시대)

붕당 정치의 시작은 선조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조정의 핵심 관직이었던 '이조전랑' 자리를 두고 신진 사림 세력 간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 원인: 김효원을 지지하는 세력과 심의겸을 지지하는 세력의 대립

  • 결과: 김효원의 집이 도성의 동쪽에 있어 동인(東人), 심의겸의 집이 서쪽에 있어 **서인(西人)**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 동인: 이황, 조식의 학문을 계승한 신진 학자들이 중심으로, 개혁에 적극적이었습니다.

    • 서인: 이이, 성혼의 학문을 계승한 기성 학자들이 중심으로, 비교적 온건하고 안정적인 개혁을 추구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붕당은 서로의 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건강한 기능을 유지했습니다.

## 2. 동인의 분열: 남인(南人)과 북인(北人) (선조 시대)

정권을 잡은 동인은 서인에 대한 처리 문제를 두고 다시 둘로 나뉘게 됩니다.

  • 원인: '정여립 모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서인 소속이었던 정철이 동인들을 매우 가혹하게 다루었습니다. 이후 정철의 처벌 수위를 놓고 동인 내에서 의견이 갈렸습니다.

  • 결과:

    • 북인(北人): 정철에게 끝까지 강경하게 복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세력입니다.

    • 남인(南人): 서인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한 세력입니다.

이후 북인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들을 다수 배출하며 광해군을 지지했고, 광해군 즉위 후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 3. 인조반정과 북인의 몰락 (광해군 ~ 인조 시대)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실리적인 중립 외교를 펼치고, 전쟁 복구 사업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서인 세력은 이를 명나라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고, 광해군이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인 인목대비를 유폐한 것을 비판하며 반란을 일으킵니다.

  • 사건: 인조반정(1623년) ⚔️

  • 결과: 서인이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광해군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북인은 완전히 몰락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때부터 조선 정계는 서인이 주도하고 남인이 참여하는 형태로 재편됩니다.

## 4. 대립의 격화: 예송 논쟁 (현종 시대)

인조반정 이후 권력을 잡은 서인과 야당 역할을 하던 남인은 현종 시대에 장례 예법 문제로 정면충돌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송 논쟁입니다.

  • 핵심 쟁점: 인조의 둘째 아들로 왕이 된 효종의 정통성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 서인: "왕이라도 사대부와 같은 예법을 따라야 한다." (왕권 견제)

    • 남인: "왕은 특별한 존재이므로 다른 예법을 적용해야 한다." (왕권 강화)

  • 결과: 1차 예송에서는 서인이, 2차 예송에서는 남인이 승리하며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붕당 간의 대립은 단순한 정책 논쟁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감정적이고 이념적인 싸움으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 5. 서인의 분열과 환국 정치 (숙종 시대)

숙종은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기 위해 신하들의 편을 들어주며 정권을 의도적으로 교체하는 환국(換局) 정치를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집권 세력이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몰려 숙청되는 피의 보복이 반복되었습니다.

  • 주요 환국:

    • 경신환국: 남인이 역모로 몰려 대거 숙청되고 서인이 집권합니다.

    • 기사환국: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로 서인이 몰락하고 남인이 집권합니다.

    • 갑술환국: 인현왕후 복위 문제로 남인이 몰락하고 다시 서인이 집권합니다.

이러한 급격한 정권 교체 속에서 서인은 다시 한번 분열하게 됩니다.

  • 결과:

    • 노론(老論):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 정치적 원칙을 중요시했습니다.

    • 소론(少論): 윤증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 비교적 유연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때부터 조선의 정치는 노론소론의 대립 구도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 6. 붕당 정치의 종말: 탕평책과 세도 정치

영조와 정조는 붕당 간의 극심한 대립이 나라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하여 **탕평책(蕩平策)**을 실시합니다. 탕평책은 특정 붕당에 치우치지 않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정치적 안정을 꾀하려는 정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나이 어린 왕들이 연이어 즉위하면서 탕평책은 힘을 잃었습니다. 왕의 외척 세력(왕비의 친족)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勢道) 정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같은 특정 가문이 수십 년간 권력을 장악하면서 붕당 정치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조선은 극심한 부패와 혼란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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