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왔습니다.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요? 바로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 년 전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조선은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이자 한반도에 문명 사회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위대한 발자취입니다. 이 글에서는 고조선의 탄생부터 발전 그리고 멸망에 이르기까지 그 웅장한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의 뜻을 품고 땅에 내려오다 환웅과 웅녀
고조선 건국 이야기는 하늘의 아들 환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환웅은 아버지 환인의 허락을 받아 인간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태백산(백두산의 옛 이름) 신단수(신령스러운 기운이 깃든 나무)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바람 비 구름을 주관하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농사 형벌 질병 등 360여 가지 일을 다스리며 백성들을 교화했습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환웅에게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고 100일 동안 동굴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수행하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지만 곰은 끈기 있게 견뎌 마침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이 여인이 바로 웅녀입니다.
단군왕검의 탄생 고조선 건국의 서막
사람이 된 웅녀는 자신과 결혼할 상대가 없어 슬퍼하며 아이를 낳고 싶어 했습니다. 이에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혼인했습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단군왕검입니다.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 나라의 이름은 조선이었으며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국가이므로 오늘날에는 고조선이라 부릅니다. 이로써 한반도에 최초의 국가가 탄생했고 우리 민족은 고조선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성장과 발전의 기틀을 다지다 고조선의 사회와 문화
고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점차 세력을 확장하며 발전해나갔습니다. 초기 고조선의 영토는 요령 지방과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농경 사회를 발전시켰으며 농업 생산력 증가는 인구 증가와 사회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비파형 동검(악기 비파와 비슷하게 생긴 청동 검)과 미송리식 토기(랴오닝성 미송리에서 처음 발견된 독특한 형태의 토기) 등은 고조선의 독자적인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발전은 고조선이 주변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법으로 다스린 사회 고조선의 8조법
고조선이 이미 체계적인 국가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바로 8조법입니다. 비록 지금은 세 가지만 전해지고 있지만 이를 통해 당시 고조선 사람들의 생활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이는 생명의 존엄성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살인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이는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셋째 도둑질한 자는 그 집의 종이 된다. 용서받고자 하면 돈을 내야 한다. 이는 사유 재산(개인이 소유한 재산)을 보호하고 노동력을 중시하는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8조법은 고조선 사회가 단순한 부족 사회를 넘어선 법과 질서가 확립된 국가였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교류와 번영의 시대 위만조선
기원전 2세기 초 중국의 진한 교체기라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틈타 위만이라는 인물이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해왔습니다. 당시 고조선의 왕이었던 준왕은 위만을 신뢰하여 서쪽 국경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나 위만은 점차 세력을 키워 결국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어 위만조선을 세웠습니다. 위만조선은 철기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농업 생산력을 크게 높였고 무기 제작 기술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한나라와 주변 부족들 사이에서 중계 무역(두 나라나 지역 사이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중개하여 이득을 얻는 무역)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으며 크게 번성했습니다. 이 시기 고조선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고조선의 멸망
번영하던 위만조선은 점차 중국의 한나라와 갈등을 겪게 됩니다. 한나라는 동방 진출을 꾀했고 고조선의 중계 무역은 한나라에 큰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원전 108년 한 무제는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고조선을 침공했습니다. 고조선은 1년여 동안 굳건히 저항했지만 내부 분열과 오랜 전쟁으로 인해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고조선의 멸망은 우리 민족 역사에서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 정신과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조선의 문화는 이후 한반도에 세워진 여러 국가 특히 삼국 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조선이 남긴 유산 우리 민족의 뿌리
고조선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서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역사입니다. 단군왕검이 제시한 홍익인간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조선은 우리 민족에게 국가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심어주었으며 공동체 의식과 자긍심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사라진 국가이지만 고조선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 민족이 얼마나 유구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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