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위한 거대한 결단, 영조 청계천을 되살려 홍수를 막다

오늘날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시민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맑은 청계천. 하지만 조선 시대, 이 하천의 이름은 본래 개천(開川)이었으며 그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흙탕물이 범람하여 수많은 이재민을 만들고, 평소에는 온갖 오물과 쓰레기로 뒤덮여 악취와 역병을 퍼뜨리는 골칫덩어리였습니다. 수많은 왕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마침내 한 명의 군주가 이 수백 년 묵은 재앙에 맞서 거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바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 군주, 영조입니다. 영조는 어떻게 한양의 가장 큰 우환이었던 청계천을 백성을 위한 희망의 물줄기로 바꾸어 놓았을까요?

한양의 골칫거리, 넘치는 청계천

조선 시대 한양의 중심을 흐르던 청계천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었습니다. 도성 안의 모든 물이 모여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중요한 물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청계천에 온갖 쓰레기와 흙, 생활하수를 무단으로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천 바닥에는 엄청난 양의 퇴적물이 쌓여 점점 얕아졌습니다. 물이 흐를 공간이 좁아지니, 장마철에 큰비가 조금만 내려도 물길은 어김없이 범람하여 주변의 가옥과 농경지를 덮쳤습니다. 홍수로 집을 잃은 백성들은 길거리에 나앉았고, 물이 빠진 자리에는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야말로 청계천은 한양의 심장부를 위협하는 시한폭탄과도 같았습니다.

왕이 직접 팔을 걷다, 준천 사업의 시작

왕위에 오른 영조는 붕당 간의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게 한 탕평책으로 정치적 안정을 이룬 뒤, 가장 먼저 백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중에서도 청계천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마침내 1760년, 영조는 청계천의 바닥을 파내고 물길을 정비하는 대규모 토목 공사를 선포합니다. 이것이 바로 준천 사업(濬川 事業)입니다. 준천(濬川)이란 ‘내를 깊게 파낸다’는 뜻으로, 사업의 핵심 목표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영조는 단순히 명령만 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사 계획부터 예산 확보, 인력 동원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챙겼고, 심지어 공사 현장에 수시로 방문하여 백성들을 격려했습니다. 이는 ‘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영조의 애민정신(愛民精神,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공사 과정과 백성의 참여

준천 사업은 조선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였습니다. 약 21만 5천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었고, 공사를 총괄하는 임시 관청인 준천사(濬川司)가 설치되었습니다. 공사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준설(浚渫, 물 밑의 흙이나 모래를 파내는 일) 작업입니다. 수백 년간 쌓인 청계천 바닥의 흙과 쓰레기를 파내어 물이 깊고 원활하게 흐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하천 양쪽에 돌을 쌓아 축대(築臺,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올린 둑)를 만들어 물길을 바로잡고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보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영조는 이 거대한 공사에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참여한 인부들에게는 임금을 지급하여, 이는 국가적인 재난 극복 사업인 동시에 가난한 백성들의 생계를 돕는 구휼 사업의 역할도 했습니다.

공사의 마무리와 그 위대한 결과

왕의 강력한 의지와 백성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준천 사업은 단 57일 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깊고 넓어진 청계천은 여름철 폭우에도 더 이상 범람하지 않았고, 한양은 지긋지긋한 홍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길이 정비되자 도시의 위생 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영조는 이 거대한 공사의 전 과정을 ‘개천 준설 등록’이라는 책에 상세히 기록하여 후대에 남겼습니다. 이는 단순한 공사 기록을 넘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왕과 백성이 어떻게 힘을 합쳐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적 교훈이 되었습니다.

백성을 향한 마음이 남긴 유산

영조의 청계천 준천 사업은 단순한 토목 공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붕당 정치의 혼란을 잠재운 군주가 그 힘을 오롯이 백성을 위해 사용했을 때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군포의 부담을 줄여준 균역법과 더불어, 준천 사업은 영조의 애민정신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였던 군주의 마음이 흙탕물 넘치던 재앙의 하천을 평화와 안정의 물길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걷는 청계천에는 수백 년 전, 백성을 사랑했던 한 위대한 군주의 고뇌와 결단이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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