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오백 년의 역사에는 수많은 왕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조선 20대 왕 경종의 죽음만큼이나 오늘날까지 끊임없는 논란과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은 드물 것입니다. 재위 기간은 불과 4년으로 짧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조선의 역사를 뒤흔든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의 시작이었습니다. 바로 경종 독살설입니다. 과연 경종은 정말 독살당한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요?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경종의 마지막 날들을 둘러싼 진실 공방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비운의 왕세자, 경종의 불안한 삶
경종은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어머니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은 뒤, 그의 삶은 한순간도 평탄치 못했습니다. 아버지 숙종의 냉대와 끊임없이 자신을 위협하는 정치 세력 속에서 그는 늘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특히 숙종 말년, 조정은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과 그의 이복동생인 연잉군(훗날 영조)을 지지하는 노론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이러한 극심한 정쟁(정치적인 다툼)의 한복판에서 왕위에 오른 경종의 입지는 매우 위태로웠고, 그는 심리적, 육체적으로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죽음의 서막, 신임옥사의 피바람
경종 즉위 후, 왕권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후사가 없었던 경종의 뒤를 이을 왕세제(왕의 동생으로서 왕위 계승자가 된 사람)로 연잉군이 책봉되자, 노론과 소론의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노론이 연잉군의 대리청정까지 주장하며 경종을 압박하자, 소론은 이를 역모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섭니다. 이것이 바로 1722년의 신임옥사입니다. 이 사건으로 김창집, 이이명 등 노론의 핵심 인물들이 대거 숙청되면서 조정은 피바람에 휩싸였습니다. 신임옥사는 경종의 왕권을 강화하는 듯 보였지만, 동시에 노론 세력의 깊은 원한을 사게 되었고, 이는 훗날 그의 죽음을 둘러싼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의문의 음식, 게장과 생감
1724년 8월, 경종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됩니다.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경종은 심한 복통과 설사 증세를 보이며 기력이 쇠해진 상태였습니다. 바로 이때, 왕세제였던 연잉군이 경종에게 음식을 올립니다. 그것이 바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게장과 생감이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예로부터 게와 감을 함께 먹는 것을 상극으로 여겼습니다. 어의들은 당연히 이를 만류했지만, 경종은 게장과 생감을 먹었고 그날 밤부터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어 결국 며칠 뒤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연잉군은 정말 형을 독살했는가?
경종이 승하하자, 왕세제 연잉군이 즉위하여 영조가 됩니다. 하지만 경종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소론 세력은 영조가 의도적으로 상극인 음식을 올려 형을 독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종이 죽음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본 인물이 바로 영조였기 때문입니다. 영조가 어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삼과 부자 등 열이 많은 약재를 쓰라고 강권했다는 기록 또한 독살설에 불을 지폈습니다. 평생 경종 독살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던 영조는 자신은 결백하며, 형의 기력을 돋우기 위해 음식을 올렸을 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에도 게장을 먹지 않으며 자신의 억울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고 전해집니다.
병약했던 군주, 단순 병사인가?
경종 독살설이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경종은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오랜 세자 시절 겪었던 정치적 스트레스로 인해 즉위 전부터 매우 병약했습니다. 실록 곳곳에는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상한 게장으로 인한 식중독이나 기존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습니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도 게장과 감을 함께 먹는 것이 직접적인 사인이 될 만큼 치명적인 독성을 일으킨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결국 경종의 죽음은 독살이라기보다는, 극심한 당쟁 속에서 심신이 모두 피폐해진 한 병약한 왕의 자연스러운 병사(病死)였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심판대에 남겨진 미스터리
경종의 죽음은 단순한 한 왕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조선은 영조의 탕평책(특정 붕당에 치우치지 않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는 정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경종 독살설은 영조 재위 내내 정국을 뒤흔드는 뜨거운 감자였으며, 이인좌의 난과 같은 대규모 반란의 명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3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과연 진실에 얼마나 다가섰을까요? 명확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경종 독살설은 여전히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매혹적인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판단은 결국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역사의 심판관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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