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피의 대가로 얻은 권력, 현대 사회는 어떻게 답할까?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강력한 국가의 초석이 잔혹한 숙청과 폭력 위에 세워진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합니다. 조선의 태종 이방원이 형제들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왕자의 난'이나, 로마의 아우구스투스가 내전을 종식하고 황제가 되는 과정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들은 혼란을 잠재우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업적'을 남겼지만, 그 과정은 분명 비정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리더십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만약 태종 이방원이 21세기에 환생한다면, 그의 행위는 '국가 안정을 위한 결단'으로 칭송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반인륜적 범죄'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될까요? 이 질문은 과거의 역사를 현대 사회의 '권력 정당성'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는 흥미로운 지적 탐구입니다.

과거의 논리: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한다

전근대 사회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종종 결과에 의해 평가되었습니다.

  • 혼란의 종식: 왕조 교체기나 극심한 내란 상황에서,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여 경쟁자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하고 질서를 회복하면 백성들은 그를 구원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과정보다는 '안정'이라는 결과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 하늘의 뜻 (天命): 동아시아에서는 최종 승리자에게 '하늘의 뜻'이 있다는 천명사상이 존재했습니다. 숙청과 폭력을 통해 권력을 쟁취한 행위 자체가 그가 하늘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증거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 능력주의: 혈통뿐만 아니라,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능력 자체가 군주의 자질로 여겨졌습니다. 태종의 강력한 리더십과 국정 운영 능력은 그의 폭력적인 집권 과정을 덮고도 남을 만큼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태종의 숙청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잠재적인 위협 요소를 미리 제거한 '필요악'이자, 위대한 군주가 되기 위한 통과 의례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잣대: '과정'의 정당성을 묻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권력의 정당성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현대 사회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결과가 아닌, 절차적 정당성인권 존중에서 나옵니다.

  • 법의 지배: 현대 국가는 모든 권력이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아무리 국가 안정을 위한 목적이라 할지라도, 법적 절차를 무시한 숙청이나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국가 폭력'이자 '범죄'입니다. 만약 현대 국가 지도자가 정치적 반대파를 무력으로 제거한다면, 그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함께 법정에 서게 될 것입니다.

  • 인권과 생명 존중: 모든 개인은 천부적인 인권과 생명권을 가진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태종이 제거했던 정도전, 이방석, 민씨 형제들 역시 현대적 관점에서는 보호받아야 할 생명권을 가진 개인들입니다.

  • 국민의 동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원천은 국민입니다.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 즉 선거를 통해 부여됩니다. 무력이나 강압으로 얻은 권력은 근본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대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태종의 행위는 명백한 '정치적 살인'이자 '쿠데타'입니다. 그의 뛰어난 업적과는 별개로, 집권 과정의 폭력성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오히려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태종과 같은 역사적 인물을 무조건 비난만 해야 할까요? 그것 역시 역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사건을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하되, 그것을 현대 사회의 가치로 재해석하고 성찰하는 자세입니다.

태종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는가?" 그리고 "위대한 목적은 비정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현대 사회는 이 질문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인 수단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답합니다. 권력은 투명한 절차와 국민적 합의를 통해 획득하고 유지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소수의 의견과 인권 역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피로 얼룩진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옛이야기를 아는 것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태종의 칼날이 남긴 역사의 상처는, 우리에게 권력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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