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바다 위를 소리 없이 가르는 이국적인 군함들의 등장은 때로 한 나라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40여 년 전인 1885년의 봄, 한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평화롭고 조용한 섬 거문도의 앞바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배들로 가득 차 기 시작했습니다. 그 배들은 조선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닻을 내렸고, 낯선 언어를 쓰는 푸른 눈의 군인들이 상륙하여 섬 곳곳에 포대를 쌓고 자신들의 국기를 내걸었습니다. 이 황당하고도 긴박했던 사건이 바로 중고등학교 역사 시험의 단골 주제이자 구한말 조선의 나약한 주권을 여실히 보여주는 거문도 사건입니다. 교과서 속 몇 줄의 문장으로만 기억되기에는, 당시 거문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강대국들의 음모와 조선 백성들이 느껴야 했던 공포는 너무나도 무거웠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영국과 러시아의 거대한 고래 싸움에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조선의 작은 섬이 새우등이 터지는 전쟁터가 되어야 했을까요.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패권 전쟁터로 전락해 가던 거문도 사건 배경과 그 긴박했던 역사의 진실을 고등학생 여러분의 눈높이에 맞추어 아주 쉽고 흥미진진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러시아의 남하 정책과 부동항을 향한 집착이 불러온 동아시아의 먹구름
거문도 사건 배경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전 세계를 무대로 벌어지고 있던 영국과 러시아의 거대한 대립인 영로 대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영토는 넓었지만, 겨울만 되면 바다가 얼어붙어 군함이 움직일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사계절 내내 얼지 않는 항구인 부동항(겨울에도 얼지 않아 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항구)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남하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누리던 영국은 러시아가 남쪽으로 내려와 자신들의 해양 패권을 위협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두 강대국은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충돌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를 역사학자들은 거대한 게임이라고 부릅니다. 러시아가 마침내 동아시아로 눈을 돌려 한반도에 발을 들이려 하자, 러시아의 길목을 차단하려는 영국의 거대한 칼날 역시 한반도의 중심을 향해 매섭게 겨누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갑신정변 이후 조선의 고립과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한 비밀 외교
1884년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이 사흘 만에 실패로 끝나자, 조선의 정치는 청나라의 가혹한 내정 간섭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청나라는 군대를 주둔시키고 고문들을 파견하여 조선의 외교와 정치를 마음대로 주물렀고, 고종과 명성황후는 청나라의 쇠사슬에서 벗어날 새로운 돌파구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습니다. 이때 조선 정부가 선택한 외교적 승부수가 바로 러시아였습니다.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비밀리에 접촉하여 조약을 맺으려 시도했습니다. 이 사건을 역사에서는 제1차 조러밀약설이라고 부릅니다. 힘없는 나라가 또 다른 강대국을 끌어들여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이 비밀 외교는, 조선이 의도하지 않은 거대한 사단(사건의 단서나 일의 시작)을 작렬하게 터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선이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한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국제 사회로 퍼져나갔고, 세계 곳곳에서 러시아와 대립하던 영국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하며 한반도를 거대한 세계 패권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영국 해군의 거문도 불법 점령과 한반도에서 벌어진 거대한 고래 싸움
조선이 러시아에게 바다를 열어줄지 모른다는 첩보를 입수한 영국 정부는 신속하고 무자비하게 움직였습니다. 1885년 4월, 영국 아시아함대 군함들은 조선 정부의 그 어떤 허락이나 통보도 없이 한반도 남해의 요충지인 거문도를 기습적으로 불법 점령했습니다. 그들은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이라는 자신들만의 이름으로 부르며, 섬에 요새를 짓고 대포를 배치하여 러시아 군함이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목을 완벽하게 차단했습니다. 이는 영토를 가진 주권 국가의 주권을 완전히 무시한 불법 행위였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선 정부는 영국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당장 군대를 철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거문도를 장악한 영국군은 조선 정부의 외침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자국의 영토가 외국 군대에 의해 강제로 점령당했음에도 이를 스스로 물리칠 힘이 없는 나약한 처지였습니다. 평화롭던 거문도는 순식간에 영국과 러시아라는 세계 최고 강대국들이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전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영국군과 거문도 백성들의 기묘한 동거와 섬에 남겨진 흔적들
영국군의 불법 점령으로 시작된 거문도 사건은 뜻밖에도 섬 내부에서 기묘한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거문도 백성들은 처음에 푸른 눈의 영국 군인들을 보고 큰 공포에 휩싸였으나, 영국군이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대신 오히려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며 노동력을 고용하자 점차 경계심을 풀었습니다. 영국군은 섬 주민들에게 일을 시키고 당시 조선에서는 구경하기 힘들었던 은화나 통조림, 신기한 물건들을 급료로 주었습니다. 또한 섬에 근대식 병원을 세워 아픈 주민들을 치료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거문도 주민들과 영국군 사이에는 서글프면서도 친밀한 동거가 이어졌습니다. 주민들은 영국 장교들의 이름을 따서 서양식 별명을 부르기도 했고, 영국군으로부터 테니스나 축구 같은 서양식 스포츠를 처음으로 배우기도 했습니다. 비록 국가 간의 관계는 주권을 침탈당한 굴욕적인 사건이었지만, 거문도의 척박한 삶을 살아가던 백성들에게 영국군의 주둔은 뜻밖의 근대 문물을 접하는 창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거문도에는 당시 사망한 영국군 수병들의 무덤이 남아 있어 외로이 역사의 흔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청나라의 영리한 중재와 러시아의 약속으로 막을 내린 사태
거문도를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팽팽한 대립은 결국 조선에 대해 강력한 지배권을 행사하려던 청나라의 중재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청나라의 이홍장은 한반도에서 영국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일 경우 자국의 안보에도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이에 청나라는 영국과 러시아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외교적 협상을 주도했습니다. 청나라는 러시아로부터 조선의 영토를 침략하거나 탐내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약속을 받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영국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았다는 명분을 확보한 영국 역시 더 이상 무리하게 거문도를 점령하여 국제적 비난을 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침내 1887년 2월, 영국 해군은 점령한 지 약 2년 만에 거문도에서 모든 군대와 군함을 철수시켰습니다. 거문도 사건은 이렇게 강대국들 간의 외교적 타협으로 끝이 났지만, 정작 영토의 주인이었던 조선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거문도 사건 이후 제기된 조선 중립화론의 대두와 뜨거운 논쟁
거문도 사건 배경과 전개 과정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경종을 울렸습니다. 주체적인 힘이 없는 상태에서 강대국들의 싸움터로 전락해 가는 나라의 운명을 보며, 일부 지식인들은 조선이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외교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혁신적인 사상이 바로 조선 중립화론입니다. 독일 부영사였던 부들러는 조선이 아시아의 스위스처럼 중립국이 되어야만 강대국들의 침략에서 벗어난 수 있다고 고종에게 건의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유길준 역시 조선 중립화론을 주장하며 청나라, 일본, 러시아, 영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공동으로 조선의 독립과 중립을 보장하는 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조선이 강대국의 속방(정치나 외교에서 다른 강대국의 지배와 간섭을 받는 종속 국가)에서 벗어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립화론은 당시 조정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고 국력을 스스로 키우는 자강(스스로의 힘을 기르고 국력을 키워 강해짐)이 뒷받침되지 못해 결국 미완의 구상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구한말의 시련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주권과 외교의 엄중한 무게
남해의 작은 섬에서 벌어졌던 거문도 사건은 한 국가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을 때 국제 무대에서 얼마나 처참하게 주권을 유린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역사적 거울입니다. 조선은 주변 열강들의 침략 야욕을 냉철하게 분석하지 못한 채 임기응변식 외교로 일관하다가 결국 거대한 영로 대립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습니다. 힘이 없는 상태에서 펼치는 비밀 외교나 동맹은 오히려 다른 강대국에게 침략의 좋은 구실만을 제공한다는 냉혹한 국제 정치의 진리를 조선은 피눈물로 배워야 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여러분은 거문도 사건을 단순히 암기해야 할 유적으로만 보지 말고, 힘없는 나라가 겪어야 했던 외교적 고립의 본질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한반도 주변 정세 역시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으로 140여 년 전의 구한말 상황과 매우 유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국력과 현명한 외교 전략만이 민족의 주권과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방패라는 사실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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