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이승만 하야 삼일오 부정 선거 시민의 힘으로 무너뜨린 최초의 독재 정권

 


4,19혁명 억눌린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지다

기나긴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지나가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며 온 세상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던 천구백육십년의 봄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찬란했으며 동시에 몹시도 가슴 아픈 시기였습니다. 해방의 기쁨과 한국 전쟁의 참혹한 비극을 연달아 겪으며 폐허가 된 땅 위에서 다시 삶의 희망을 일구어가던 평범하고 선량한 우리 국민들에게 당시의 정치적인 현실은 너무나도 차갑고 참담하기만 했습니다. 무려 십이 년이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긴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권력을 홀로 독점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자유당 정권은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영원히 유지하겠다는 끝없는 탐욕에 눈이 멀어 헌법을 마음대로 뜯어고치고 국민들의 소중한 권리를 짓밟는 무자비한 독재를 일삼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경제는 바닥을 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밥술을 뜨기조차 힘든 끔찍한 가난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지만 권력자들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자신들의 배만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이고 숨 막히는 억압의 시간 속에서 국민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거대한 분노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이 마치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억눌렸던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거대한 함성이 화산처럼 폭발하여 부패한 독재 정권을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세우고 영원히 무너뜨린 위대한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깊이 있게 되짚어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영광스러운 출발점 사일구 혁명입니다. 권력을 쥐고 흔들던 자들의 총칼 앞에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맨몸으로 거리에 나서서 피를 흘리며 맞서 싸웠던 자랑스러운 우리 선배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의 숭고하고도 눈물겨운 투쟁의 역사를 지금부터 아주 자세히 펼쳐보겠습니다.

삼일오 부정 선거로 폭발한 시민들의 분노와 마산의 붉은 눈물

사일구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폭풍우가 몰아치게 된 가장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천구백육십년 삼월 십오일에 벌어진 끔찍하고도 노골적인 국가적 범죄 삼일오 부정 선거였습니다. 당시 여든다섯 살이라는 매우 많은 나이였던 이승만 대통령의 뒤를 이어 권력을 안전하게 물려받기 위해 자유당 정권은 자신들의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을 무조건 당선시켜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투표로는 도저히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그들은 결국 경찰과 공무원 그리고 심지어 험악한 깡패들까지 총동원하여 전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치밀하고 악랄한 선거 조작을 저지르고 맙니다. 투표소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의 후보를 찍어둔 가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무더기로 집어넣고 세 명이나 아홉 명씩 억지로 짝을 지어 서로를 감시하며 투표하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불이 꺼진 틈을 타서 투표함을 통째로 바꿔치기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불법과 조작이 백주 대낮에 버젓이 자행되었습니다.

이처럼 국민의 신성한 주권이 깡그리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참담한 상황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국민들의 분노는 마침내 한계점을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선거 당일 저녁 억울하게 투표권을 빼앗기고 쫓겨난 경상남도 마산의 시민들과 어린 고등학생들은 도저히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하고도 정의로운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찾겠다는 시민들의 순수하고 정당한 외침에 당황한 경찰과 권력자들은 평화롭게 시위하는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진짜 총탄을 발사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평화로웠던 마산 시내는 순식간에 붉은 피와 비명으로 얼룩진 비극의 현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대한 사일구 혁명의 서막을 알리는 마산 의거의 가슴 아픈 시작이었습니다.

김주열 학생의 참혹한 죽음이 사일구 혁명의 거대한 도화선이 되다

삼일오 부정 선거 당일 마산에서 벌어진 격렬한 시위 과정에서 무수한 희생자가 발생한 가운데 시위에 참가했던 평범한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갑자기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의 애타는 어머니와 마산 시민들은 사라진 김주열 군을 찾기 위해 거의 한 달 동안 마산 시내 곳곳을 헤매고 다녔지만 경찰은 시위대 속에 숨어든 북한 간첩들의 소행일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만 늘어놓으며 사건의 진실을 철저하게 은폐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던 시간들이 흘러 사월 십일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시신 한 구는 온 나라를 경악과 슬픔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습니다. 바다 위로 떠오른 참혹한 시신의 주인공은 바로 실종되었던 김주열 군이었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의 눈에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할 때 쏘는 무시무시한 최루탄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경찰이 무자비하게 쏜 최루탄에 맞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어린 학생의 시신에 돌을 매달아 차가운 바다 밑바닥에 몰래 유기했다는 이 끔찍하고도 반인륜적인 범죄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마산 시민들의 슬픔은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분노로 변해버렸습니다. 김주열 군의 참혹한 죽음은 단순히 한 학생의 비극적인 희생을 넘어서 그동안 억눌려왔던 모든 국민들의 저항 의지를 단숨에 폭발시키는 거대한 도화선(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일)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찰의 끔찍한 만행을 규탄하며 마산 시청과 경찰서를 포위하고 격렬하게 시위를 벌이는 마산 시민들의 처절한 모습은 당시 언론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를 지켜본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서서히 일어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대생 피습 사건과 피의 화요일 사일구 혁명의 불길이 서울을 뒤덮다

마산에서 시작된 분노의 불길은 이내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로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월 십팔일 고려대학교 학생 수천 명은 학교를 뛰쳐나와 진정한 민주주의의 회복을 부르짖으며 국회 의사당 앞까지 진출하여 평화적이고 웅장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학생들을 향해 자유당 정권의 비호를 받던 흉악한 정치 깡패들이 몽둥이와 쇠파이프를 들고 무자비하게 덮쳐 학생들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끔찍한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맙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깡패들에게 짓밟힌 대학생들의 처참한 모습은 서울 시내 모든 대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의 끓어오르는 피에 불을 붙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천구백육십년 사월 십구일 마침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도 비극적인 하루인 피의 화요일이 밝았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서울 시내의 수많은 대학교와 고등학교 심지어는 교복을 입은 어린 중학생들까지 일제히 학교 문을 박차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독재 타도와 부정 선거 다시 하라를 외치며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를 향해 나아가는 수십만 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의 거대한 행렬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물결이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에 극도로 당황하고 겁에 질린 이승만 정권은 무장한 경찰들을 동원하여 비무장 상태의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해 직접적으로 발포(총이나 대포 따위를 쏘아 불을 뿜게 함)하라는 가장 끔찍하고 잔혹한 명령을 내리고 맙니다. 경찰의 무차별적인 총격 앞에서 꽃다운 나이의 수많은 학생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피를 쏟으며 거리에 쓰러져갔고 서울의 아스팔트 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흘린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들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가 오히려 국민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참극이 벌어진 직후 정부는 오후를 기해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비상 계엄령(국가 비상사태 시 군대가 지역의 행정과 사법을 통제하는 조치)을 선포하고 군대와 탱크를 진주시켜 억지로 시위를 억누르고자 했습니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 대학교수단의 시가행진과 무너지는 독재 정권

무시무시한 계엄령이 선포되고 거리마다 군인들과 거대한 탱크가 쫙 깔리면서 시위는 며칠 동안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습니다. 삼일오 부정 선거의 책임을 지고 자유당의 핵심 간부들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정부 차원에서도 수습을 시도했지만 이승만 대통령 본인은 끝까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국민들은 단순히 몇몇 정치인들이 물러나는 얄팍한 속임수가 아니라 부패한 독재 정권 자체의 완전하고 근본적인 퇴진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었습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맴돌던 사월 이십오일 마침내 사태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꾸는 결정적이고 감동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침묵하던 어른들이 드디어 일어선 것입니다. 서울 시내 각 대학교에 몸담고 있던 이백여 명의 대학교수들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가슴 뭉클한 글귀가 적힌 커다란 현수막을 앞세우고 이승만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며 거침없는 시가행진(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 길거리를 줄지어 걸어가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어린 학생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지켜보며 깊은 슬픔과 뼈아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던 일반 시민들은 지식인들인 교수들이 앞장서서 나아가는 모습에 엄청난 용기를 얻었고 순식간에 수십만 명의 군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교수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시위대의 규모는 사월 십구일 당시보다 훨씬 더 거대하게 불어났고 밤을 새워가며 서울 시내를 가득 채운 시민들의 함성은 독재 정권의 숨통을 완벽하게 조여갔습니다. 특히 계엄령을 유지하기 위해 거리에 배치되어 있던 군대조차도 더 이상 불의한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무고한 국민들을 향해 총을 쏘지 않겠다며 사실상 시위를 묵인하고 중립을 지키면서 자유당 정권은 자신들을 보호해 줄 마지막 무력 수단마저 완전히 잃어버리고 완벽하게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발표와 사일구 혁명이 맞이한 승리의 아침

사월 이십오일의 거대한 시위가 밤을 꼬박 지새우고 사월 이십육일 아침까지 멈추지 않고 더욱 거세게 이어지자 철옹성 같았던 권력의 중심부도 마침내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하여 더 이상 군대도 경찰도 통제할 수 없게 된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에게 남은 길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미국 정부마저 이승만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사태의 즉각적인 해결을 강력하게 압박하자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이승만은 결국 사월 이십육일 오전 십시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역사적인 성명을 라디오를 통해 발표하게 됩니다.

무려 십이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대한민국의 첫 번째 독재자는 결국 국민들의 거대한 분노와 정의로운 저항에 무릎을 꿇고 초라하게 하야(대통령 등 높은 관직에 있던 사람이 스스로 벼슬을 내놓고 물러남)하는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이승만의 사임 소식이 스피커를 타고 전국에 울려 퍼지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서로를 축하했습니다.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수많은 희생자들의 숭고한 목숨과 맞바꾼 너무나도 값지고 위대한 승리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로써 삼일오 부정 선거는 완전히 무효가 되었고 부패의 온상이었던 자유당 정권과 대한민국 제일공화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쓸쓸하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일구 혁명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남긴 위대하고 영원한 발자취

사일구 혁명은 단순히 부정 선거에 항의하고 늙은 독재자를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하나의 정치적인 사건으로만 기억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 위대한 혁명은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상 최초로 국가의 진짜 주인이 지배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바로 평범하고 선량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해 낸 역사적 쾌거입니다. 외부의 거대한 힘이나 외국의 간섭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 국민들 스스로의 굳건한 힘과 피 흘리는 희생을 통해 불의한 권력을 심판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사일구 혁명이 가지는 긍지와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합니다.

이날 거리에서 울려 퍼졌던 자유와 정의를 향한 숭고한 외침은 이후 우리 헌법의 가장 중요한 근본정신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고 훗날 혹독한 군사 정권 시절에 수많은 시민들이 또다시 민주주의를 위해 맞서 싸울 수 있었던 든든한 용기와 희망의 등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어두웠던 독재의 밤을 끝내고 찬란한 민주주의의 아침을 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바쳤던 수많은 선배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의 뜨거운 피와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결코 멈추어 있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끊임없이 되새기고 배우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거울입니다. 사일구 혁명의 위대한 정신을 우리 모두의 가슴속 깊이 새기고 민주주의라는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더욱 튼튼하게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것은 이제 바로 여러분과 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가장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역사적 숙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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