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헌법을 파괴한 권력의 민낯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련

우리의 치열했던 현대사 속에서 가장 어둡고 비극적인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주저 없이 천구백오십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을 떠올릴 것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고 수백만의 국민들이 살던 고향을 떠나 낯선 남쪽 땅으로 피난을 떠나야 했던 그 처참한 시절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오직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참혹한 전쟁의 포성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임시 수도였던 부산의 좁은 골목과 임시 국회 의사당에서는 총칼 대신 정치적인 음모와 권력을 향한 끝없는 탐욕이 빚어낸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존망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오직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을 마음대로 뜯어고친 사건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깊이 있게 살펴볼 발췌 개헌 그리고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뼈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헌법은 한 나라의 기틀이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방패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첫 번째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정부 시절 이 숭고한 헌법은 오로지 한 사람의 장기 집권을 위한 낡은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부터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버린 이 두 번의 위헌적인 헌법 개정 과정과 그 속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 보겠습니다.

임시 수도 부산에서 벌어진 정치적 공포와 이승만 정부의 위기

이야기의 시작은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천구백오십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제헌 헌법 즉 나라를 세우면서 처음 만든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지금처럼 국민들이 직접 투표소에 가서 뽑는 것이 아니라 국회 의원들이 모여서 간접적으로 선출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은 초기에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정국을 이끌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독단적인 국정 운영과 경제 정책의 실패로 인해 점차 국민들과 정치권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천구백오십년 오월 삼십일에 치러진 두 번째 국회 의원 선거에서 이승만을 지지하는 세력은 전체 의석의 불과 이삼십 퍼센트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참담한 패배를 겪게 됩니다. 반면 이승만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무소속 의원들과 야당 의원들이 국회의 절대다수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선거 결과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천구백오십이년의 두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국회 의원들의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이승만이 다시 당선될 가능성은 숫자상으로 영 퍼센트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승만 정부는 결국 자신에게 불리한 헌법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뜯어고치려는 무리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국회 의원들이 아닌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로 헌법을 바꾸면 전쟁 중인 상황에서 정부의 행정력과 경찰력을 동원해 시골의 순박한 유권자들을 통제하고 표를 얻어 당선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입니다. 하지만 야당이 장악한 국회가 이승만의 직선제 개헌안을 순순히 통과시켜 줄 리 만무했습니다. 국회는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에서 뽑은 국무총리가 실질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의원 내각제 개헌안을 제출하며 이승만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짓밟은 무력 시위와 첫 번째 비극인 발췌 개헌의 탄생

합법적인 투표와 토론으로는 헌법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승만 정부는 결국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기로 결심합니다. 천구백오십이년 오월 임시 수도였던 부산 일대에 갑작스럽게 비상계엄령을 선포해버린 것입니다. 계엄령이란 국가가 비상사태일 때 군대가 출동하여 지역의 행정과 사법 권한을 장악하는 무서운 조치입니다. 전쟁터도 아닌 후방의 임시 수도에 계엄령을 내린 정부는 헌병과 경찰을 동원해 야당 소속 국회 의원들이 타고 있던 통근 버스를 통째로 납치하여 헌병대로 끌고 가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정부는 이들이 국제 공산당과 몰래 내통했다는 터무니없는 억지 죄명을 씌웠고 이를 우리 역사에서는 부산 정치 파동이라고 부릅니다.

뿐만 아니라 백골단 땃벌떼 등 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정체불명의 정치 폭력 조직들이 백주 대낮에 부산 거리를 활보하며 야당 의원들을 협박하고 폭행했습니다. 국회 의원들은 언제 잡혀가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자신들이 주장하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의 핵심 내용과 야당이 주장하던 의원 내각제 개헌안의 일부 내용을 교묘하게 섞어서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만들어 냈습니다. 양쪽의 법안에서 필요한 부분만 쏙쏙 뽑아냈다고 하여 이를 발췌 개헌이라고 부릅니다.

천구백오십이년 칠월 사일 군대와 경찰이 국회 의사당을 겹겹이 포위한 살벌한 상황 속에서 의원들은 강제로 의사당 안으로 끌려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찬성하는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서고 반대하는 사람은 앉아있게 하는 기립 표결 (자리에서 일어나 찬성과 반대를 표시하는 투표 방식) 이라는 강압적인 방식을 통해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총을 든 군인들이 살기를 띠며 쳐다보는 앞에서 감히 자리에 앉아 반대 의사를 낼 수 있는 의원은 없었습니다. 결국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으로 대한민국 헌법은 처음으로 그 순결성을 잃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고쳐지고 말았습니다. 이 개헌안에는 국회를 상원과 하원 두 개로 나누는 양원제 (국회를 두 개의 독립된 합의체로 나누어 운영하는 의회 제도)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승만 정부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대통령 직선제만 쏙 빼먹고 양원제는 끝내 제대로 실시하지 않는 뻔뻔함을 보였습니다.

멈출 줄 모르는 탐욕과 두 번째 임기 만료의 위기

발췌 개헌이라는 무리수를 두어 헌법을 억지로 바꾼 덕분에 이승만은 천구백오십이년 선거에서 무난하게 제이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권력을 연장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듬해인 천구백오십삼년 길고 길었던 한국 전쟁의 휴전 협정이 맺어지고 정부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됩니다. 전후 복구의 바쁜 나날 속에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이승만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나는 천구백오십육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승만 정부는 또다시 거대한 법적 장애물과 마주치게 됩니다.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은 한 번만 다시 할 수 있다 즉 최대 두 번까지만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중임 제한 규정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미 초대 대통령과 이대 대통령을 연달아 지낸 이승만은 헌법대로라면 세 번째 선거에는 절대로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권력의 단맛에 깊이 빠져 있던 이승만과 그를 둘러싸고 온갖 이권을 누리던 집권 여당 자유당 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승만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유지하는 영구 집권 (권력을 잃지 않고 죽을 때까지 영원히 나라를 다스리려는 것) 을 치밀하게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한번 헌법을 뜯어고쳐야만 했습니다. 자유당은 천구백오십사년 매우 기괴하고도 황당한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합니다. 그 내용은 바로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만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현대 법치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완전히 짓밟은 것이었습니다. 오직 이승만이라는 특정 개인 한 사람만을 위해 국가의 최고 법인 헌법에 예외 조항을 만들겠다는 이 뻔뻔한 시도는 국내외의 수많은 지식인들과 깨어있는 시민들을 커다란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습니다.

한 편의 비극적인 코미디 사사오입 개헌의 황당한 진실

천구백오십사년 십일월 이십칠일 마침내 문제의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국회 표결이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헌법을 고치기 위해서는 국회 의원 전체 숫자의 삼분의 이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날 국회에 적혀 있던 전체 의원의 수는 이백삼 명이었습니다. 이백삼의 삼분의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백삼십오점삼삼삼이라는 무한 소수가 나옵니다. 사람의 숫자는 소수점으로 쪼갤 수 없기 때문에 백삼십오점삼삼삼 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온전한 한 사람을 더한 백삼십육 명이 찬성해야만 법안이 통과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의회에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자 법적 원칙이었습니다.

숨 막히는 투표 결과 찬성은 백삼십오 표 반대는 육십 표 기권과 무효가 일곱 표로 집계되었습니다. 찬성표가 법적 통과 기준인 백삼십육 표에서 딱 한 표가 모자란 백삼십오 표에 그친 것입니다. 투표 결과를 확인한 국회 부의장은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부결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렸습니다. 자유당 의원들은 충격에 빠졌고 야당 의원들과 국민들은 헌법을 지켜냈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법안이 부결된 다음 날 자유당은 긴급 회의를 열고 어용 학자들을 동원하여 기상천외한 논리를 억지로 만들어 냅니다. 바로 수학의 반올림 원리를 헌법에 적용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삼십오점삼삼삼에서 소수점 이하인 영점삼삼삼은 영점오보다 작기 때문에 사사오입 (넷 이하는 버리고 다섯 이상은 위로 끌어올려 계산하는 수학적 반올림 방식) 의 원칙에 따라 버려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따라서 삼분의 이 이상은 백삼십육 명이 아니라 백삼십오 명이라는 억지 주장을 펴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유당은 이 황당한 수학적 궤변을 앞세워 전날의 부결 선언을 불법적으로 취소해버리고 개헌안이 합법적으로 통과되었다는 가결 선언을 강제로 밀어붙였습니다. 사람의 표를 수학적 소수점으로 나누고 반올림하여 국가의 헌법을 바꿔버린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대한민국 정치사를 영원히 조롱거리로 만든 참담한 코미디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폭력이었습니다.

헌법 파괴의 부메랑과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눈물겨운 투쟁

이처럼 상식과 법치주의를 완전히 무시한 사사오입 개헌을 소급 적용 (새로 만든 법을 법이 만들어지기 전의 일에까지 거슬러서 적용하는 것) 하여 이승만은 기어코 천구백오십육년 제삼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게 됩니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무리하고 불법적인 헌법 파괴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국민들의 마음은 이미 이승만 정부로부터 싸늘하게 돌아서 있었습니다. 당시 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강렬하고 직관적인 구호를 내걸었고 이 구호는 가난과 독재에 지친 국민들의 가슴속에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비록 선거 유세 도중 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여 이승만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고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습니다.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두 번의 역사적 사건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크고 무거운 교훈을 남겨줍니다. 권력을 향한 맹목적인 욕심이 어떻게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을 짓밟고 나라의 기틀을 무너뜨리는지 똑똑히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힘과 억지로 밀어붙인 정권은 결국 국민의 지지를 잃고 파멸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역사는 증명했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이승만 정부의 독재는 천구백육십년 사사오입 개헌보다 더 끔찍한 불법을 저지른 삼일오 부정 선거를 계기로 폭발한 국민들의 분노 즉 사일구 혁명에 의해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 체제는 결코 하늘에서 거저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헌법을 유린하던 독재 권력에 맞서 피와 땀으로 맞서 싸웠던 수많은 선배 시민들의 거룩한 희생과 끈질긴 저항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눈물겨운 결실입니다. 이 아프지만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은 이제 온전히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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