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정말 신의 후손인가, 건국신화와 진무 천황의 실체를 파헤쳐봅니다

태양의 여신이 낳은 나라라는 이야기

일본 신화의 시작은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입니다. 이자나기라는 신이 왼쪽 눈을 씻자 그 안에서 태어난 존재가 바로 아마테라스이며 이후 일본 황실은 스스로를 이 여신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아마테라스는 남동생 스사노오와 갈등을 겪다가 동굴에 숨어버리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고 세상이 어둠에 잠기자 다른 신들이 모여 그녀를 밖으로 끌어내는 장면은 일본 신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부분으로 꼽힙니다. 이후 아마테라스는 손자인 니니기노미코토에게 벼 이삭을 건네며 지상을 다스리라는 명을 내렸는데 이를 천손강림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명을 내린 주체가 문헌마다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오래된 전승에서는 타카미무스히라는 남신이 명을 내렸고 후대로 갈수록 아마테라스가 단독으로 명령한 형태로 바뀌어갔습니다. 즉 처음부터 하나로 정리된 신화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계속 편집되고 변형된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니니기의 증손자가 바로 일본 초대 천황으로 알려진 진무 천황이며 이렇게 태양신의 혈통이 인간 세상의 통치자로 이어졌다는 서사가 지금까지도 일본 황실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기록한 문헌은 8세기 초에 편찬된 고사기와 일본서기 두 권인데 흔히 기기라고 함께 묶어 부릅니다. 두 문헌은 같은 신화를 다루면서도 세부 내용에서 미묘하게 엇갈리는 부분이 많은데 이는 신화가 애초부터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지역과 씨족의 전승이 뒤섞이며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합니다. 문제는 이 화려한 계보가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며 그 간극을 하나씩 짚어보면 신화가 어떻게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었는지가 드러납니다.

초대 천황 진무는 정말 존재한 인물이었을까

일본서기에 따르면 진무 천황은 기원전 660년에 즉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규슈 지역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원정을 떠나 나가스네히코라는 세력을 물리치고 지금의 나라 지역에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이른바 진무 동정 이야기입니다. 원정 도중 형이 화살에 맞아 죽고 야타가라스라는 세 발 달린 까마귀의 안내를 받는 등 신화적 요소가 곳곳에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일본 역사학계의 중론은 진무 천황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원전 660년이라는 연대 자체가 문제인데 이는 육십갑자로 신유년에 해당하며 후대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역산해 만들어낸 숫자라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2대 스이제이 천황부터 9대 가이카 천황까지 이른바 결사팔대라 불리는 여덟 명의 천황이 실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재위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고 업적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본 왕가의 후손인 다이쇼 천황의 넷째 아들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조차 생전에 진무 천황은 신화 속 인물일 뿐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10대 스진 천황 무렵부터 실존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15대 오진 천황 이후로는 실존했다는 견해가 대체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진무 천황의 행적 자체가 실제로는 10대 스진 천황의 사적과 겹치거나 동일 인물을 후대에 분리해 기록한 결과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두 명의 다른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가 시간이 흐르며 둘로 나뉘어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결국 초대부터 십여 대에 이르는 계보는 후대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창작된 이야기에 가깝다는 것이 냉정한 학문적 평가입니다.

신화 속에 숨어 있는 한반도의 흔적

진무 천황의 동정 신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반도와의 연결고리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국내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진무 천황 집단이 규슈로 들어가기 전 경로와 그들이 지녔던 문화 요소가 부여와 고구려 계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습니다.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 집단이 일본 열도의 국가 형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학문적으로 제기되어온 셈입니다. 다만 신화를 기록하고 편찬한 세력은 이러한 한반도의 영향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배제하려 한 흔적이 뚜렷합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닌데 고사기와 일본서기 모두 8세기 초에 편찬되었으며 당시 목적은 객관적인 역사 기록이 아니라 야마토 왕권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진무 천황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기록에서는 오히려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7세기 후반 궁중 시인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가 지은 장례가에는 덴무 천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스카를 다스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여기에는 진무 천황도 스진 천황도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는 고사기가 편찬되기 이전까지는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의 건국신화 체계가 완전히 자리 잡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진무 천황이라는 인물과 그 화려한 계보는 필요에 의해 후대에 정교하게 짜맞춰졌을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일본 열도와 한반도 남부 사이에는 고대부터 사람과 문물의 왕래가 활발했다는 고고학적 근거가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으며 야마토 정권이 성립되던 시기 역시 이러한 교류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는 시각이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건국신화가 이런 교류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곳곳에 남겨둔 것은 신화를 만든 이들도 자신들의 기원을 온전히 새로 지어낼 수는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만세일계라는 신화가 근대에 다시 소환된 이유

고대에 만들어진 이 신화가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것은 뜻밖에도 19세기 후반입니다.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정부가 들어선 직후 새 정부는 오랫동안 상징적 존재에 머물렀던 천황을 실질적인 국가 통합의 구심점으로 세워야 했습니다. 문제는 대다수 백성들이 천황을 주권자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바로 고대 신화였습니다. 1870년 정부는 신토를 국교로 삼고 제정일치를 선언하면서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직계 자손이라는 명분으로 천황을 신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세일계라는 표현 즉 단 한 번도 혈통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유일한 왕가라는 주장이 이때부터 국가 이데올로기로 굳어졌습니다. 학교 교육과 군대 조직 전반에 이 신화가 스며들었고 천황은 살아 있는 신으로 받들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역대 천황의 계보 자체가 지금과 조금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진구 황후를 15대 천황으로 포함시켰던 과거의 계보가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제외되는 등 당대의 존황론과 민족주의 분위기에 맞춰 계보 자체가 손질되었습니다. 결국 신화는 한 번 만들어지고 끝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필요에 따라 계속 재구성되고 동원된 정치적 자산이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재정비된 만세일계 신화는 이후 근대 일본이 대외 팽창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도 활용되었는데 천황이 신의 후손이라는 믿음이 국민을 하나의 정신으로 결집시키는 강력한 장치로 기능했기 때문입니다. 신화 하나가 학교 교실과 군대 막사를 거쳐 국가 전체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이념으로까지 확장된 셈이니 그 파급력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아마테라스는 원래부터 여신이었을까

오늘날 아마테라스는 당연히 여신으로 여겨지지만 이것이 처음부터 고정된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에도 시대 그림 자료를 보면 아마테라스가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그려진 사례도 존재하며 이는 아마테라스를 여신으로 보는 인식이 완전히 보편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신화 속 성별조차 시대에 따라 유동적이었다는 점은 일본 건국신화 전체가 얼마나 편집과 재해석을 거쳐왔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줍니다. 신칙의 주체가 문헌마다 달라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가장 오래된 판본에서는 남신 타카미무스히가 명령을 내리지만 후대 판본으로 갈수록 아마테라스 단독의 명령으로 바뀌었고 이렇게 바뀐 형태가 결국 메이지 시대에 천황의 권위를 재확립하는 핵심 명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깔끔하게 정리된 건국신화는 고대의 원형 그대로가 아니라 후대의 정치적 필요에 맞춰 다듬어진 최종 버전에 가깝습니다.

결국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진무 천황과 아마테라스로 이어지는 일본 건국신화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시대적 필요에 의해 구성되고 다듬어진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현대 일본 역사학계 스스로도 초기 천황들의 실존 여부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황실 관계자조차 신화와 역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신화가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신화가 언제 만들어지고 왜 그 시점에 소환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사회가 당시 무엇을 필요로 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고대에는 야마토 왕권의 정당성이 필요했고 근대에는 국민을 하나로 묶을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일본 건국신화는 그때마다 가장 쓸모 있는 형태로 다시 쓰였던 셈입니다. 신화를 그대로 믿는 것도 무작정 부정하는 것도 아닌 그 신화가 만들어진 맥락을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일본 고대사를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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