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카가 막부는 왜 이렇게 허약했나, 240년 존속했지만 실권은 70년뿐이었던 이유

출발부터 연합정권이었던 태생적 한계

무로마치 막부는 1336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세운 정권입니다. 그는 원래 가마쿠라 막부의 유력 무사였다가 고다이고 천황의 막부 토벌에 가담해 정권을 무너뜨렸고 이후 천황과도 갈라서며 새로운 무가 정권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이 막부가 처음부터 쇼군 한 사람의 절대적인 권위 위에 세워진 정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무로마치 막부는 태생적으로 여러 슈고 다이묘들이 함께 쇼군을 추대하고 합의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일종의 연합정권에 가까웠습니다. 강력한 쇼군으로 꼽히는 3대 요시미쓰와 6대 요시노리를 제외하면 성립 초기부터 쇼군의 권력 기반은 몹시 취약했고 오히려 슈고 다이묘로 성장한 지방 세력이나 그 밑의 유력 가신들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가문의 대를 잇는 가독 상속 방식조차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 막부는 물론 슈고 다이묘 집안 내부에서도 후계자를 둘러싼 다툼이 끊이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훗날 여러 지방의 슈고 가문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내분 대부분이 이러한 불명확한 상속 규칙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단순히 사소한 제도적 결함이 아니라 막부 전체의 안정성을 뿌리에서부터 흔드는 근본적인 약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권력의 뿌리 자체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으니 이 막부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앞서 있었던 가마쿠라 막부와도 비슷한 구조였는데 겐지 가문 출신과 그 인척들인 유력 슈고들이 함께 권력을 나눠 갖는 방식 자체가 무가 정권 초기부터 반복되어온 일본식 통치 관행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가마쿠라 막부와 달리 무로마치 막부는 애초에 남북조 분열이라는 혼란기 속에서 태어났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권력 기반을 다질 시간적 여유조차 충분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나라를 다스린 기간은 70년 남짓

무로마치 막부는 1336년부터 1573년까지 237년 동안 이어졌지만 정작 일본 전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했다고 볼 수 있는 기간은 놀랍도록 짧습니다. 초반 약 56년간은 교토의 무로마치 막부에 맞서 요시노 지역에 별도의 남조 천황 정권이 존재하며 서로 정통성을 다투는 남북조 시대가 이어졌기 때문에 막부가 온전히 권위를 확립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남조가 항복한 1392년 이후에야 비로소 막부의 권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이 안정기는 1467년 오닌의 난이 터지기 전까지 약 75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이 기간에도 쇼군이 요절하거나 오랫동안 자리가 공석이었던 시기가 반복되었고 실질적으로 쇼군다운 쇼군이라 부를 만한 인물은 초대 다카우지와 2대 요시아키라 3대 요시미쓰 6대 요시노리 정도에 그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237년이라는 존속 기간과 70여 년에 불과한 실질적인 통치 기간 사이의 이 커다란 간극이야말로 무로마치 막부가 얼마나 이름뿐인 정권으로 오랜 세월을 버텨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심지어 안정기로 꼽히는 이 75년 가운데서도 진정한 전성기라 부를 만한 시기는 3대 쇼군 요시미쓰가 활약하던 16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이니 무로마치 막부가 온전한 권위를 누린 기간은 237년이라는 전체 역사에 비하면 극히 짧은 찰나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강한 쇼군이 암살당하며 무너진 균형

무로마치 막부의 허약함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6대 쇼군 요시노리의 죽음입니다. 요시노리는 쇼군에 취임하기 전부터 자신을 옹립한 유력 가문들에게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요구받을 정도로 처음부터 견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즉위한 뒤에는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걸었는데 자신을 저주했다는 이유로 주요 세력을 강경하게 탄압하는 등 슈고 다이묘들을 억누르고 쇼군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런 강압적인 통치 방식은 결국 지방 유력 슈고였던 아카마쓰 미쓰스케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고 1441년 가키쓰의 난이라는 이름으로 요시노리는 결국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모처럼 강해지려던 쇼군의 권위가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꺾여버린 이 사건 이후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고 결국 쇼군을 대신해 슈고 다이묘들의 합의제가 다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한 명의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할 때마다 오히려 극단적인 반작용이 뒤따르는 이런 패턴은 이 막부가 애초에 강력한 중앙집권을 감당할 만한 체질이 아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쇼군을 암살한 아카마쓰 미쓰스케가 곧바로 막부군에게 토벌되어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더욱 강력해진 쇼군이 아니라 토벌에 공을 세운 또 다른 유력 슈고 가문이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강력한 쇼군을 제거한 자리를 채운 것 역시 또 다른 지방 세력에 불과했으니 권력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쇼군이 아닌 슈고 다이묘들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셈입니다.

어린 쇼군들이 연이어 즉위한 불운

요시노리의 암살 이후 무로마치 막부는 유독 어린 쇼군이 연달아 즉위하는 불운까지 겹쳤습니다. 요시노리의 뒤를 이은 요시카쓰는 겨우 아홉 살의 나이로 쇼군이 되었지만 즉위한 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를 이은 동생 요시마사 역시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쇼군직에 올랐는데 심지어 정식으로 쇼군에 취임하기까지 다시 몇 년의 세월이 더 걸리면서 그동안 쇼군 자리가 사실상 비어 있는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요시마사는 정치를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성장했고 훗날 국정 대부분을 유력 슈고 다이묘들에게 맡겨둔 채 스스로는 건축과 예술에 몰두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안 그래도 취약했던 쇼군의 권위가 이렇게 어린 후계자들이 연이어 즉위하는 상황 속에서 한층 더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어린 쇼군이 즉위할 때마다 실권은 자연스럽게 그를 옹립한 유력 가신이나 후견인에게 넘어갔는데 이런 구조가 반복되다 보니 쇼군이라는 자리 자체가 실질적인 통치자라기보다는 여러 세력이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 내세우는 상징적인 얼굴마담에 가까운 존재로 점점 굳어져갔습니다.

후계자 문제 하나로 시작된 전국의 내전

이렇게 켜켜이 쌓여온 구조적 취약함은 결국 1467년 오닌의 난이라는 대규모 내전으로 폭발했습니다. 발단은 놀랍도록 사소했는데 쇼군 요시마사가 처음에는 자식이 없어 동생 요시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가 뒤늦게 친아들을 얻자 이를 번복하려 하면서 후계 구도에 혼란이 빚어진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 후계자 문제를 두고 막부의 요직인 간레이를 맡고 있던 호소카와 가쓰모토와 유력 슈고 야마나 모치토요가 각각 다른 후보를 지지하며 정면으로 대립했습니다. 그런데 이 다툼은 단순한 후계 문제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영지를 넓히고 싶어 하던 전국 각지의 슈고 다이묘들까지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한쪽에 가담하면서 순식간에 전국적인 내전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쇼군이 나서서 중재하고 조율해야 할 문제였지만 애초에 그럴 만한 권위도 힘도 갖추지 못한 무로마치 막부는 이 거대한 혼란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결국 이 전쟁을 거치며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실권과 권위는 완전히 무너졌고 일본은 사실상 센고쿠 시대라는 약육강식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 내전은 무려 십여 년 가까이 이어지며 수도 교토를 잿더미로 만들었는데 정작 발단이 되었던 후계자 문제는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이미 처음의 중요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전쟁의 성격 자체가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애초에 후계 문제 하나로 시작된 다툼이 전국 각지 슈고들의 영토 확장 욕심과 뒤엉키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은 이 막부의 권력 구조가 얼마나 작은 불씨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부실한 것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뿌리부터 흔들렸던 권력 구조의 최후

무로마치 막부가 이렇게 허약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을 종합해보면 결국 출발점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가 문제였습니다. 쇼군 개인의 절대적 권위가 아니라 여러 슈고 다이묘의 합의에 의존하는 구조로 시작된 이상 쇼군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늘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반대로 쇼군이 약할 때는 곧바로 지방 세력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하는 취약한 균형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명확하지 않은 후계 구도와 반복된 어린 쇼군의 즉위라는 우연적 불운까지 겹치면서 이 취약함은 점점 더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무로마치 막부는 이름뿐인 정권으로 오랜 세월을 버티다가 오닌의 난이라는 결정적 계기를 통해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쇼군 요시아키가 1573년 오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며 완전히 종말을 맞기까지 이 막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져 있었던 셈이며 그 붕괴의 씨앗은 처음 정권이 세워지던 순간부터 이미 뿌려져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아시카가 막부의 역사는 화려한 명목상의 지위와 실질적인 힘의 공백이 나란히 공존했던 240년의 기록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시대가 남긴 교훈은 아무리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한 정권이라도 권력의 기초가 처음부터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다면 결국 작은 균열 하나에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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