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Russo-Japanese War) 백인 제국을 이긴 최초의 아시아 국가, 쓰시마 바다에서 세계가 놀란 이유

1905년 5월 27일 쓰시마 앞바다에서 세상을 뒤흔든 해전이 벌어졌습니다. 유럽 최강으로 꼽히던 러시아 함대가 불과 이틀 만에 거의 전멸했고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백인 제국을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이겼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에게 믿기 어려운 충격이었습니다. 러일전쟁은 이렇게 한 시대의 상식을 뒤집은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대가 된 한반도에는 슬픈 결과를 남겼습니다. 오늘은 러일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일본의 승리로 끝났는지 그리고 이 전쟁이 한국과 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와 일본은 왜 만주와 한반도를 두고 부딪혔을까요

러일전쟁의 뿌리는 청일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이기고도 삼국간섭으로 요동반도를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 뒤 러시아는 청에게서 뤼순과 다롄을 빌려 쓰는 권리를 얻어 냈고 만주에 철도를 놓으며 세력을 넓혔습니다. 러시아는 얼지 않는 바다로 나아갈 항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1900년 청에서 의화단 사건이 터지자 러시아는 군대를 보내 만주를 차지했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철군을 약속하고도 미루는 러시아의 모습에 일본은 이대로 두면 만주가 러시아의 땅이 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본은 불안했습니다. 러시아가 만주를 차지하고 한반도까지 손을 뻗으면 일본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1902년 세계 최강 해군을 가진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어 러시아를 견제했습니다. 한편 한국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두 나라 사이의 협상이 번번이 틀어지면서 전쟁의 분위기는 점점 짙어졌습니다.

영일동맹은 일본에게 든든한 뒷배가 되었습니다. 러시아와 일본이 싸울 때 다른 나라가 러시아 편을 들면 영국이 일본을 돕겠다는 약속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덕분에 일본은 유럽 열강의 개입을 걱정하지 않고 전쟁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러일전쟁은 단순한 두 나라의 다툼이 아니라 열강들의 계산이 얽힌 국제 전쟁이었던 셈입니다.

선전포고도 하기 전에 포성이 울렸습니다

1904년 2월 8일 일본 해군은 뤼순항에 정박한 러시아 함대를 한밤중에 기습했습니다. 선전포고가 이루어지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인천 앞바다에서도 일본 함대가 러시아 군함 바랴그호와 코레예츠호를 공격했습니다. 두 배는 큰 피해를 입고 스스로 침몰했습니다. 일본은 이틀 뒤인 2월 10일에야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일본은 한국에도 압력을 가해 한일의정서를 맺게 했습니다. 전쟁에 필요한 한국 땅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한 조약이었습니다. 일본군은 한반도를 지나 만주로 올라갔고 압록강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물리치며 첫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대한제국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전쟁터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나라의 크기만 보면 러시아가 훨씬 유리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땅이 너무 넓었고 수도에서 전쟁터까지 병력을 실어 나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아직 완전히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병사와 물자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사이 일본은 가까운 바다를 이용해 빠르게 병력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203고지를 두고 수많은 병사가 쓰러진 뤼순 전투

러시아는 뤼순을 철벽 요새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일본군은 이곳을 점령해야 바다를 안전하게 쓸 수 있었기에 총공격을 이어 갔지만 콘크리트로 다진 요새 앞에서 너무 많은 병사를 잃었습니다. 전투가 길어지자 일본은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203고지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 작은 언덕을 두고 몇 달에 걸친 처절한 싸움이 이어졌고 1904년 12월 일본군이 마침내 고지를 차지했습니다. 이곳에서 대포로 항구 안의 러시아 함대를 때리자 함선들은 차례로 가라앉았습니다. 이듬해인 1905년 1월 러시아 수비군은 항복했습니다. 일본은 큰 대가를 치르고 승리를 얻었습니다. 공격을 지휘한 노기 마레스케 장군도 이 전투에서 두 아들을 모두 잃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어진 3월의 펑톈 전투에서도 일본이 간신히 이겼지만 병력과 탄약이 거의 바닥나 더 싸울 힘이 없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발틱 함대가 쓰시마에서 사라졌습니다

뤼순의 함대를 잃은 러시아는 마지막 희망을 걸었습니다. 멀리 발트해에 있던 함대를 불러 극동으로 보낸 것입니다. 이 발틱 함대는 아프리카를 돌고 인도양을 건너 몇 달 동안 지친 항해를 이어 갔습니다. 길고 험한 여정에 병사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1905년 5월 27일 쓰시마 해협에서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본 함대는 정확한 포격과 치밀한 작전으로 러시아 함대를 둘러싸고 공격했습니다. 전투는 이틀 만에 끝났고 러시아의 주력 함선 대부분이 침몰하거나 항복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피해는 아주 작았습니다. 이 해전은 해군 역사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승리 가운데 하나로 평가됩니다.

승부를 가른 것은 준비와 정보였습니다. 일본의 정찰선이 러시아 함대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무선 전신으로 소식을 알렸고 일본 함대는 오랜 훈련으로 포격 솜씨를 갈고닦은 상태였습니다. 반면 러시아 함대는 낡은 배와 새 배가 뒤섞여 있었고 오랜 항해로 정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투에 들어갔습니다.

포츠머스 조약은 왜 일본 국민을 분노하게 했을까요

두 나라 모두 더는 싸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일본은 돈과 병력이 바닥났고 러시아는 내부에서 혁명의 불길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1905년 1월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러시아는 전쟁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중재로 1905년 9월 미국 포츠머스에서 강화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한 권리를 인정했고 뤼순과 다롄의 조차권과 남만주 철도의 일부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사할린 남쪽 절반도 일본의 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간절히 바랐던 전쟁 배상금은 받지 못했습니다. 큰 희생을 치르고도 보상이 없다는 소식에 화가 난 일본 국민은 도쿄에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승리의 기쁨 뒤에는 이렇게 무거운 현실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히비야 방화 사건으로 불립니다. 일본 정부는 전쟁 비용을 대느라 영국과 미국에서 큰 빚을 졌고 국민에게도 무거운 세금을 걷고 있었습니다. 국민은 이긴 전쟁이라고 믿었기에 배상금이 없다는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사실 일본은 이미 더 싸울 힘이 없었기에 이 조약은 일본 정부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말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1904년 한일의정서와 제1차 한일협약으로 일본의 간섭이 깊어졌습니다. 1905년 7월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서로의 지배권을 인정했고 11월 일본은 군대를 앞세워 을사늑약을 강요해 외교권을 빼앗았습니다. 민영환 등이 목숨을 끊어 항의했고 1906년에는 통감부가 설치되었습니다.

러일전쟁이 세계에 남긴 질문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러일전쟁의 결과는 세계 곳곳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서양 열강에게 짓눌려 있던 아시아와 중동의 여러 민족은 같은 아시아 나라가 유럽의 제국을 꺾었다는 소식에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중국과 인도 그리고 오스만 제국 같은 곳에서 근대화와 독립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 무렵입니다. 러시아는 전쟁의 패배로 혁명의 불길이 더 커졌고 제국의 약점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중국의 쑨원 같은 인물들도 일본의 승리를 보며 변화의 가능성을 느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승리를 평화의 길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길로 이어 갔습니다. 아시아의 희망처럼 보였던 나라가 곧 이웃 나라를 지배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한국은 러일전쟁의 결과로 외교권을 빼앗겼고 1910년 나라를 잃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당시 한국인 가운데에는 같은 황인종 나라인 일본의 승리를 반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곧 그 기대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뼈아프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이웃에게 어떤 얼굴을 보이는지를 이 전쟁이 분명히 보여 준 것입니다. 러일전쟁은 한 나라의 놀라운 성공담이면서 동시에 이웃의 눈물이 걸린 사건이었습니다. 이 글이 러일전쟁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작은 길잡이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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